요한계시록과 바울 서신서들은 재림에 관하여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요?
큰 틀에서 두 사도들을 비교하며 얼마나 동일한 것인지 살펴봅니다.
1. 하늘 보좌 앞에 선 두 사도
요한이나 바울은 모두 낙원(새 예루살렘 성)의 하늘 보좌 앞에서 여러 계시들을 받았습니다.
두 사도들이 보고 묘사한 성부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요한은 에스겔 선지자가 본모습과 유사하게 묘사했습니다(계4:3,4, 겔1:26-28).
하늘 보좌를 영광과 위엄의 관점에서 기록했습니다.
반면에 바울은 매우 구체적으로 기술하는데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현재 혈과 육을 지닌 사람들이 볼 수는 없지만 때가 되면(재림을 염두한 듯) 스스로 자신을
보이신다는 것입니다.
매우 명쾌한 설명으로 바울처럼 쉽게 전했으면 합니다.
* 내가 곧 성령에 감동되었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들렀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
(계4:2,3) - 요한
* 기약이 이르면 하나님이 그의 나타나심을 보이시리니...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어떤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이시니...(딤전6:15,16) - 바울
2. 두 사도가 본 성자 예수님
열두 제자중 가장 사랑받았던 요한은 위엄을 갖춘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강조합니다(계1:12-16).
예수님의 품에 안겨 음식을 먹던 모습은 사라지고 그 앞에서 죽은 자처럼 되었습니다(계1:17).
반면 바울은 이방성도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소개합니다.
모든 성도들은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모습과 동일한 부활체가 된다는 것입니다.
*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빌3:21)
3. 성령의 감동으로 받은 계시
계시록을 요한에게 보여주신 분은 성령님입니다(계1:10. 4:2, 17:3, 21:10).
어떤 자들은 천사(사자)라고 하는데(계1:1) 계시는 성령님의 고유권한입니다(엡1:17).
요한은 성령 안에서 "이리로 올라오라"는 말과 함께 <환상과 계시>를 받았습니다(계4:1).
바울 역시 성령의 감동으로 계시를 받았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본 것을 <환상과 계시>로 요약합니다(고후12:1).
요한처럼 하늘로 이끌려 갔습니다(고후12:2).
4. 삼위 하나님이 함께 참여하는 재림
두 사도 모두 삼위 하나님이 '재림의 시간과 장소에 함께 한다'고 주장합니다.
요한은 재림 때 성부 하나님도 오신다고 세 번 말합니다(계1:4,8, 4:8).
실질적으로 오셨을 때는 성부의 오심이 생략되게 기록합니다(계11:17, 16:5).
성령님은 주인공 되시는 예수님의 입으로 나온 말씀을 즉각 실행합니다.
* 그의 입에서 예리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리니...(계19:15, 엡6:17)
바울 역시 성부께서 성자를 데리고 온다고 알려줍니다(살전4:14).
재림 때 성부 하나님은 스스로 자신을 보이십니다(딤전6:15).
성령님은 재림의 마지막 나팔이 울리자마자 죽었던 성도들을 부활체로 변화시키고,
살아 있던 성도들 역시 동일한 형체로 바꿉니다(롬8:11, 빌3:21)
5. 적그리스도의 등장
계시록을 통해 요한은 적그리스도를 상세하게 묘사합니다.
두 증인과 싸우는 적그리스도를 시작으로(계11:7) 사탄으로부터 권세를 부여받아 대 환난의 열쇠를
여는 자로 나옵니다(13장).
14,15장은 대 환난으로 인한 수많은 순교자들과 살아서 주님을 긴박하게 맞이하는 적그리스도는 성도들의
가는 길을 대적합니다.
16장은 파멸되는 그의 왕국과 , 17,18장은 음녀와 더불어 성도들을 박해하는 모습까지 나타납니다.
그 이후로도 불 못에 던져질 때까지 계속 등장합니다.
바울 역시 적그리스도에 관한 주제를 매우 중요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그의 등장을 재림의 큰 징조로 봅니다.
* 누가 어떻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되지 말라, 먼저 배교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그날이 이르지 아니하리니(살후2:3)
또 바울은 적그리스도가 성전에 앉아서 자신을 하나님으로 드러낼 것도 말합니다(살후2:3).
적그리스도의 최후 또한 예수님의 재림으로 끝장납니다(살후2:8)
6. 마지막 나팔 때 재림이 일어난다
요한이나 바울 모두 마지막 나팔이 울릴 때 재림이 일어난다고 단언합니다.
요한은 세 번에 걸쳐서 이것을 강조합니다(계10:7, 11:15, 16:5).
바울 역시 부활장에서 자세하게 언급합니다.
*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고전15:51)
다른 곳에서는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도 표현합니다(살전4:16).
바울은 마지막 나팔 즉 재림의 순간 울리는 나팔을 너무 잘 알았고 상세하게 묘사합니다.
*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살후4:16)
7. 부활
계시록은 재림의 상황을 이렇게 압축합니다.
마지막(일곱째) 나팔 → 재림 → 부활 → 휴거 순서로 진행됩니다.
바울서신 역시 이런 패턴을 따릅니다.
특별히 고전 15장을 통해 마지막 나팔(하나님의 나팔) → 재림 → 부활(변화) → 휴거가 일어납니다.
계시록과 바울서신 이외의 성경도 동일한 패턴으로 진행됩니다.
환난 전 휴거라는 것은 재림의 소망을 주기도 하지만 심취하면 큰 폐단이 됩니다.
요한계시록은 부활의 영광을 21,22장을 통해 드러내며,
바울은 고전 15장을 통해 매우 영광스러운 소망으로 전개합니다.
8. 천년왕국
요한은 일관되게 천년왕국이란 용어가 아닌 '천 년 동안 왕 노릇한다'로 표현합니다(계20:4,6).
그리고 현 지구가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변형될 것을 말하며(계21:1), 중간단계인 임시적 천년왕국이란 말은
입밖에도 꺼내지 않습니다.
바울은 어떻게 재림 후 펼쳐지는 세상을 말하고 있을까요?
주저함 없이 간단명료하게 말합니다.
재림 후에는 더 이상 어떤 미혹도 신자들에게는 없고, 항상 주와 함께 있습니다.
천 년 동안만 아니라 세세토록 그렇습니다.
* ...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살전4:17)
9. 최후 심판
계시록은 최후 심판받을 존재로 사망과 음부의 이름이 등장합니다.
*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계20:14)
바울서신 역시 부활 이후에 사망의 힘이 소멸됨을 보여줍니다.
부활의 영광 뒤에 초라하게 퇴장하는 모습입니다.
*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전15:55)
10. 새 예루살렘 성
계시록은 세 번에 걸쳐 새 예루살렘 성이 하늘에서 이 땅으로 내려온다고 알려줍니다(계3:12, 21:2,10).
언제 내려올까요?
바로 예수님이 재림할 때 성부 '하나님의 장막'(계21:3)으로 명명된 새 예루살렘 성이 함께 내려옵니다.
바울은 이 계시에 대해 어떻게 말씀했을까요?
포괄적으로 하나님의 나라로 말합니다.
*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딤후4:1)
다가올 세계의 이름을 종종 하나님 나라로 묘사합니다.
* ...혈과 육은 하나님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고전15:50)
재림 후 다가올 세상으로 하나님 나라의 명칭을 사용한 것은 바울만이 아니라 요한도 그렇습니다.
*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계11:15)
바울이 새 예루살렘 성을 몰랐다기보다는 이방 성도들의 계시에 대한 이해를 고려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고전3:2. 요16:12).
만일 바울이 유대 그리스도인들에게 편지를 썼다면 히브리서처럼 여러 번에 걸쳐서 새 예루살렘 성을 언급했을
것입니다(히11:10,16, 13:14).
요한계시록의 중심 내용을 바울 사도는 서신서를 통해 동일하게 언급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되었기에 오류나 서로 모순된 것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성경해석의 전체적인 틀을 잘 형성하면 계시록 해석에 큰 도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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