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들이 즐겨 사용하는 문구가 있습니다.
대답하기 난처할 때는 "당신이 아십니다"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세 번 반복해서 묻습니다.
그 때 베드로는 "주님께서 아시나이다"로 답변을 피합니다(요21:17).
사도 요한이 지상에 남은 성도들이 고난받는 장면을 환상으로 봅니다.
14만 4천과 흰 옷 입은 수많은 무리들을 보고 있는데, 24 장로중의 하나가 묻습니다.
"흰 옷 입은 무리들이 누구며, 어디서 왔는지 아느냐?"(계7:13)
사도 요한이 지상에 남은 성도들이 고난받는 장면을 몰랐을리가 없습니다만
겸손하게 듣고자 합니다. 자기보다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 내가 말하기를 내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니(계7:14)
여기서 주목해보아야 할 것은 장로나 요한이나 인침을 받았던 14만 4천에 대해서는 어떤 질문도 없다는 것입니다.
14만 4천명의 수를 요한은 보지 못했고 오직 말로만 들었습니다(계7:4).
서로 질문도 안하고 이해한 것을 보면 14만 4천이 곧 흰 옷 입은 무리들과 동일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인침을 받아서 하나님의 심판 재앙으로부터 보호 받아야 하는 자들은 모든 성도들입니다.
초림부터 재림까지 모든 성도들이 아니라 주의 재림을 앞두고 심판 재앙들(인, 나팔, 대접)이 내릴 때
보호를 받아 재앙을 겪지 않는 성도들입니다.
* 너희 머리털 하나도 상하지 아니하리라(눅21:18)
그렇지만 성도들은 적그리스도의 심한 핍박을 받습니다.
흰 옷 입은 자들은 바로 적그리스도의 심한 박해를 받은 성도들로 일부는 순교를 당하고,
또 나머지 역시 동일한 어려움을 당하지만 살아서 주님을 맞이합니다.
*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눅21:19)
이야기의 전체적인 흐름을 중시여겨야 합니다.
14만 4천을 실질적인 숫자로 보는 것은 여러 가지로 적합하지 않는 해석입니다.
유대인들로만 보는 것도 전혀 문맥과 맞지 않습니다.
'14만 4천', '열두 지파', '유대인'을 모두 문자적으로 보든지, 혹은 모두 상징으로 봐야 합니다.
하나는 문자 나머지는 상징으로 보는 것은 가장 나쁜 해석법입니다.
이십사 장로와 요한과의 대화를 통해, '말로만 들었던 14만 4천'이 곧 흰 옷 입은 무리들로 보는 것은
매우 자연스런 해석입니다.
재림을 앞두고 모든 성도들은 인침을 받아 하나님이 악인들에게만 내리는 심판 재앙들로부터 보호받지만,
적그리스도의 심한 핍박 아래서 순교나 고통중에 살아서 주님을 맞이하는 것이 종말론의 흐름입니다.
요한과 베드로의 고백처럼 "당신이 아십니다"는 말을 묵상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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