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에 와서 최근 계시록 책들을 좀 보았습니다.
작년 12월에 나온 그레고리 K. 비일 교수의 책이 눈에 띄였습니다.
그는 달라스 신학교를 나와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신약학 교수입니다.
두 권으로 된 이 책은 분량이 어머어마 합니다.
무려 2천 페이지가 넘습니다.
충실하게 무천년주의를 바탕으로 기록했습니다.
기본적으로 요한신학과 묵시문학이란 두 가지 견고한 틀로 세웠습니다.
책의 내용 상당부분이 그런 틀을 세우는데 할애하고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 신학자들과 한국의 유명 신학자들이 찬사를 쏟아냈습니다.
그러나 존재하지 않은 요한신학과 묵시문학으로 접근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합니다.
소설쓰듯 쓴 글들에 찬사를 보내는 것은 안타까움을 자아냅니다.
이 책에서 홍해와 유리바다가 왜 동시에 나오는가에 대해 다룹니다(계15장).
이런저런 다른 견해들을 나열하면서 왜 그런지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끝나버립니다.
왜 계시록 15장에는 유리바다와 더불어 홍해가 등장할까요?
1. 성도가 악인들에게 포위되어 위급한 상황
홍해와 유리바다가 등장하는 곳은 어김없이 성도들이 급박한 위기에 처했을 때 입니다.
마치 피난처로 가지 않는 한 더 이상 생명을 보장할 수 없는 순간입니다.
출15장은 홍해바다 건너편으로 옮겨지며 성도들의 위기가 끝납니다.
재림을 코 앞에 두고 성도들은 절대절명의 위기에 처합니다.
적그리스도의 손아귀를 벗어날 방법이 재림 이외에는 없습니다.
주의 재림으로 성도들은 지상에서 유리바닷가로 옮겨집니다(계15:2).
유리바닷가는 새 예루살렘 성에 있습니다(계4:6).
평소에는 수정과 같이 맑은 유리바다지만 재림 때에는 불이 섞인 곳으로 변합니다.
아버지의 보좌로부터 불이 강같이 흘러 악인들을 심판하기 때문입니다(단7:10).
2. 노래를 부른다
홍해와 유리바닷가 모두 성도들이 서서 노래를 부르는 장소입니다.
하나님이 개입하여 행하신 놀라운 일들을 노래합니다.
두 노래를 비교하면 너무도 유사합니다.
출15:1-21절과 계15:2-4절이 그렇습니다.
성도들과 악인들이 코 앞에서 만났고 하나님은 성도들로부터 영광을 얻었습니다.
마치 다윗의 고백처럼 원수들의 목전에서 성도들에게 상을 베푸셨습니다(시23:5).
무천년적 해석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어떤 것이든 확실하게 말하지 않는 것입니다.
확실한 것도 불확실하게 만들어버립니다.
계시록을 종말론적인 관점으로 보지 못하고 현 시대적 사건들로 변형시켰기에
독특하고 유일성을 지닌 역사적 사건이라 말하지 못합니다.
책의 부피나 연구의 시간에 비례해서 너무도 무익한 해석이 무천년적 관점이 아닌가 씁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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