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용과 여자의 싸움(12:1-17)
1. 세 개의 구조로 된 이야기
12장에는 세 개의 구조로 된 이야기가 나온다.
첫째, 큰 영광을 입은 여자가 남자 아이를 낳는 모습 속에서 아이를 죽이려는 붉은 용이 등장한다.
남자 아이는 하나님께 가고, 아이를 낳은 여자는 광야로 가서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다.
둘째, 하늘의 전쟁으로 하나님의 천사들과 사탄과 그 추종자들 간의 싸움이다.
이 싸움은 하늘로 올라간 아이 즉 예수님의 구원사역의 완성으로 일어났다.
셋째, 붉은 용 즉 사탄이 마지막 기승을 부리면서, 성도들과 싸우고 있다.
2. 여자가 낳은 아들과 붉은 용의 싸움(1-6)
1) 아들 = 예수 그리스도
여자가 낳은 아들은 누구인가?
그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이다(5).
철장으로 장차 세상을 통치할 자는 바로 예수님이다.
- 네가 철장으로 그들을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시 2:9) - 재림하실 메시아
(행 4:25-26)
-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그가 철장을 가지고
그들을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계 2:26, 27, 12:5) - 재림하실 예수님
- 그의 입에서 예리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그들을 철장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계 19:15) - 재림하실 예수님
성경은 모두, 철장으로 다스릴 남자가 ‘재림하실 예수님’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다.
예수님은 사역을 마치고 하나님 앞 보좌 앞으로 올라갔다(5).
2) 여자 = 구약교회
여자가 낳은 아들은 예수님이다. 그렇다면 아들을 낳은 여자는 누구인가?
창 3:15절은,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고 말씀한다.
여자의 후손으로 메시아는 어떻게 오시는가? 메시아 탄생은 선민들을 통해서 그 흐름을 잡을 수 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이다(마 1:1).
메시아는 하나님의 언약 공동체인 구약 교회를 통해서 오셨다.
구약교회가 얼마나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는가?
그 절정의 시간에 예수님이 메시아로 오셨다.
- 때가 차매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갈 4:4)
여기서 교회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
신약교회는 오순절 성령의 강림의 역사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 뿌리는 구약의 이스라엘 공동체 즉 구약교회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둘로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입은 자들의 모임인 구약 교회와, 신약의 이방인들이 포함된 교회는
모두 한 뿌리를 가지고 태동되었다(롬 11:17).
옛 언약 속에 태동된 이스라엘 신앙공동체(교회)도 피 흘림을(출 24:8) 통해서 세워졌다.
그들은 “열국 중에서 하나님의 소유(출 19:5)”이며, 제사장 나라(출 19:6)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었다. 짐승을 잡아서 그 피를 뿌렸지만 이것은 장차 와서 흘릴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예표한다
(히 9:13). 야고보 사도는 교회를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약 1:1)라 칭한다.
구약교회는 신약 교회의 뿌리이다.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원 가지는 구약교회이며, 신약교회는 원가지에 접붙임을 받았다고 말씀한다.
그러므로 여자는 구약 교회이면서 신약교회를 태동케 하는 뿌리가 된다.
따라서 여자는 구약과 신약의 모든 교회를 의미한다.
- 또 한 가지 얼마가 꺾이었는데 돌 감람나무인 네가(이방교회들), 그들 중에(구약교회)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의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가 되었은즉(롬11:17)
교회가 예수님을 탄생시킬 수 있는가?
예수님은 교회의 머리인데 어떻게 교회가 그를 잉태할 수 있는가 반문 할 수 있다.
예수님을 성육신시켜 세상에 보내신 분은 바로 성부 하나님이시다. (요 1:34, 5:37, 7:28, 8:42, 17:18).
구약의 성도들은 오랜 시간동안 메시아가 오기를 대망해 왔었다.
- 이 약속은 우리 열두 지파가, 밤낮으로 간절히, 하나님을 받들어 섬김으로 얻기를 바라는 바인데...
(행 26:7)
그토록 갈망하던 메시아가 하나님의 정한 시간이 되었을 때 성육신을 통해서 세상에 보내심을 받았다
(갈 4:4). 그들은 메시아가 오셔서 통치하시는 모습을 얼마나 갈망했던가?
구약시대 믿음의 선진들은 그것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었다(히 11:13).
이스라엘의 부르짖음과 예수님의 탄생은 하나님의 깊은 계획 속에서 이루어진 일로서,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교회의 간절한 부르짖음 속에서 오신 메시아가, 교회의 머리가 된다는 것은 이상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일이다.
3) 붉은 용 = 사탄 = 마귀(9)
붉은 용이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9절에 잘 나타나 있다.
큰 용이며 옛 뱀 마귀이며 사탄이다.
그는 천하를 꾀는 자 즉 미혹하는 자이며, 자신을 추종하는 타락한 천사들과 함께 땅으로 쫓겨남을
당했다.
붉은 용은 여자로부터 태어난 아들을 죽이기 위해 온갖 모략을 시행한다.
두 살 아래의 어린 아이들을 죽였고,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 그를 유혹하여 그 사역을 완수하지 못하게
시도했다(마 4:1-11).
결국 유대인을 꾀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이지만, 죽음이 그를 음부에 영원히 가두지 못했다.
예수님은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여 하늘로 승천하셨고, 성령을 보내심으로 구속사역을 완성하였다.
붉은 용 사탄은 남자를 낳은 여자 곧 교회를 핍박하고 있다.
여자 곧 교회는 박해를 피해 광야로 도망한다.
거기서 양육을 받는데, 그 곳은 ‘하나님이 예비하신 곳’이다(6).
박해를 받는 교회가 피할 곳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광야로 피하는 광경은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하는 출애굽 때의 구약교회를 연상시킨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그곳에 강한 보호하심을 경험한다.
'광야'라는 곳은 출애굽한 구약의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세밀한 보호하심을 받는 곳이다.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기 전 힘든 여정속에서 하나님이 그들을 보호하고 인도하신 곳이 광야이다
(출 14:24).
신약의 교회와 성도들 또한 구약 성도들처럼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를 경험하며,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게 된다(시 12:5, 7; 55:6-8).
- 시내 산에서 말하던 그 천사와 우리 조상들과 함께 광야교회에 있었고, 또 살아있는 말씀을 받아
우리에게 주던 자가 이 사람이라(행 7:38)
- 광야와 그곳의 예비하신 곳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보호를 받는 교회를 가리킨다(계 12:6, 14)
하나님께서 사탄의 핍박으로부터 교회를 보호하기 위해 ‘예비하신 곳’(6)은 장소적 개념이 아니다.
혹자는 성도가 핍박을 피할 특정한 장소가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방법으로 성도의 핍박을 피하게 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원수의 눈앞에서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며 상을 베푸시는 분이시다(시 23:5).
- 내가 여호와께 피하였거늘, 너희가 내 영혼에게 새 같이, 네 산으로 도망하라 함은 어찌함인가
(시 11:1)
여자 곧 교회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서 양육을 받았다.
그곳은 하나님이 예비하신 곳이다(6).
그곳은 무풍지대가 아니라 오히려 험한 고난이 존재한다.
사탄은 큰물을 토하여 여자를 삼키려 한다(15-16).
이것이 바로 교회가 받는 엄청난 고난이다.
고난의 때에 하나님은 교회를 홀로 내버려 두지 않는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지켜 주신다.
땅이 그 입을 벌려 용의 입에서 토한 강물을 삼켰다(16).
구약의 광야 교회(행 7:38)를 악한 자들 가운데서 지켜 주었다.
성도가 핍박받는 것은 신부가 신랑을 위해 거룩함으로 단장하는 것과 같다.
고난은 신부를 정금처럼 만드는 용광로이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곳은 세상에서 잘 보이지 않는 은밀한 장소가 아니다.
교회는 세상의 빛이며, 산위에 있는 동네처럼(마 5:14) 온 세상에 나타날 의무가 있다.
교회를 양육하는 하나님의 예비하신 곳은 광야이면서 동시에 그곳은 하나님의 품 안이다.
하나님의 품 속에서 나오는 힘과 지혜, 사랑, 책망을 먹으면서 교회는 승리하게 되는 것이다.
교회의 양육은 성령의 음성을 통하여 일어난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어야 한다(계 2:7, 11, 17, 29, 3:6, 13, 22).
충성된 교회나 책망을 많이 받은 교회나 모두 성령의 인도함을 따라 양육되어야 한다.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교회는,결국 ‘이기는 자’가 된다.
성령님은 모든 교회가 다 이기는 자가 되기를 원하신다.
3. 하늘의 전쟁(7-12)
1) 하늘에서의 전쟁
하늘에서, 천사장 미가엘(유 9)과 사탄의 그 추종자들과의 전쟁이 있었다.
사탄과 그 추종자들은 이 싸움에서 패하여 땅으로 내어 쫓김을 당했다.
이 일은 사탄의 첫 번째 내어 쫓긴 사건이 아니다.
‘다시’(8) 하늘에서 그들이 있을 곳을 얻지 못했다.
그들의 쫓겨남이 최소 두 번째 이상임을 보여준다.
이 사건은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으로 인한 사탄의 권세가 깨어짐을 보여준다
-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눅 10:17)
2) 언제 마귀와 그 사자들이 쫓겨났는가?
싸움의 시간에 대해 여러 가지 설들이 있지만, 전체적인 문맥에서 보면 재림을 바로 앞둔
시점이나, 7년 환난 직전이 아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복음이 완성된 시점으로 보아야 한다.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했고, 성도는 마귀를 대적하여 이기는 권세를 받았다.
-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벧전 5:9)
-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약 4:7)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리스도의 권세가 이루어진 시간(10)은 바로 십자가와
부활의 때이다. 이것으로 우리에게 전해진 복음은 완성된다.
완성된 복음은 이제 이방인들에게 증거 되어져야 한다.
십자가와 부활은 사도들이 전한 복음의 중심 내용이다.
예수님도 십자가와 부활이 있은 후 예루살렘으로부터 모든 족속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하셨다
(눅 24:47). 두 사건을 통해 성령을 부어주심으로 복음이 완성되었다.
구약 성경에서 사탄은 욥(욥 1:9-11, 2:4-5), 여호수아, 스룹바벨을 참소했다(슥 3:1-5).
율법아래 있던 구약의 모든 성도들은 사탄의 참소를 피할 수가 없다.
예수님의 구속사역으로 마침내 참소자 사탄이 쫓겨났다.
참소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율법을 통한 속죄는,임시적이며 반복적이다(히 7:11-28).
예수님의 속죄제사는 동물의 몸과 피가 아닌 자신의 몸과 피를 드림으로 완성되었다.
더 이상 반복이 필요 없다.
죄인에 대한 완전한 속죄로 인하여 의가 우리에게 전가되었다.
십자가에서 죄 값을 지불했기에 더 이상 참소할 수 없게 되었다.
참소의 조건이 되는 율법의 요구를 예수님은 모두 담당하셨다.
죄의 값은 사망이다(롬 6:23),
죄인된 우리의 짐을 지고 죽음으로 율법의 요구를 충족시켰다.
그리스도 혼자서만 십자가에서 죽은 것이 아니라, 우리도 함께 죽었다(롬 7:4, 갈2:20)
-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롬8:1)
성도는 예수 안에서 새 생명으로 태어난 자유자이다(고후 5:17).
참소자 사탄은 더 이상 하나님 앞에서 설 자리가 없어졌다.
사탄의 쫓겨난 시점은 십자가를 통해서 죄값을 담당한 시간이며, 부활은 죄에 대한 승리의
증표가 되는 사건이다(눅 10:18).
- 이제 이 세상에 대한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의 임금이 쫓겨나리라,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 겠노라 하시니(요 12:31-32)
이 싸움은 천사들의 싸움에서 끝나지 않고 성도들의 싸움까지 연결되어 있다.
성도들도 사탄과 더불어 싸워 이긴다.
그 이김의 근원이 바로 어린양의 피와 말씀이다(11).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사역으로 인하여 하나님 나라가 도래하였다.
성령을 통해 나타나는 하나님 나라의 통치는 성도로 하여금 귀신을 내어 쫓고, 사탄의 결박을
풀 수 있다. 성도와 사탄과의 싸움은 주님이 오실 때까지 계속된다.
3) 하늘과 그 가운데 거하는 자들(12) → 하늘에 속한 모든 성도들(지상에 남은 성도들)
성도가 즐거워하는 이유는, 사단과의 싸움이 더 이상 패배가 아닌 승리로 종결되기 때문이다.
성도는 칼과 창으로 싸우지 않는다. 어린양의 피와 증거하는 말씀을 통해서 이긴다(계 12:11).
더 이상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믿음의 선진들은 죽기까지 목숨을 아끼지 아니하고 싸워 이겼다
(계 13:11).
단순한 입술의 고백이 아니라, 그 고백에는 목숨을 내놓는 결단과 행동이 나타나야 한다.
-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막 8:35)
스스로의 힘으로 사탄을 이겼는가?
여러 가지 환란 속에서도 승리하는 것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 즉 삼위 하나님의 보호하심
때문이다.
-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 8:37)
4) '땅과 바다에 거하는 자들’은 누구인가?(12)
(1) 미혹된 악인들과 불경건한 자들
이 부분은 잘못 해석되기 쉬운 곳이다.
아직 세상에 남아 있는 성도들로 보려는 경향이 강하다.
그 이유는 마귀가 분노하는 가운데 내려갔고(12), 여자의 남은 자손들(성도들)과 싸우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화'(12절)를 당하는 대상은 악인들과 교회내의 그릇된 사상에 오염되어 회개하지 않는
불경건한 자들이다.
마귀가 이들을 직접적으로 핍박해서가 아니라, 마지막 나팔 재앙(셋째 화)때 영원한 지옥 불에
함께 던져지기 때문이다. 이보다 ‘더 큰 화’가 있겠는가?
마귀는 자신의 능력을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에게 부어준다.
그들로 하여금 세상 사람들을 ‘큰 이적’(계 13:13)으로 미혹하여(계 13:14), 마귀와 최종적인
종말을 같이하게 한다.
- 그가 또 언약을 배반하고, ‘악행하는 자를 속임수로 타락’시킬 것이나, 오직 자기의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강하며 용맹을 떨치리라(단 11:32)
(2)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들(계 10:11)
11-14장의 말씀을 받는 대상이 바로 이들이다. 이들은 누구인가?
땅에 거하는 자들 곧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들이다.(계 14:6)
이들은 짐승의 표를 받거나 우상에게 절하는 것에서 돌아서야 한다.
여기서(10-19장) 주의해야 할 점은 어느 사건이나 그 결론은 마지막 나팔과 연결되며,
주님이 재림하시는 순간으로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5) 시간에 대한 이해
마귀는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음을 알고, 더 분노하며 목적을 이루려 한다.
그리하여 악인들과 불경건한 자들을 끝까지 미혹하며, 성도들에게 큰 환난을 가함으로
배교자로 만들려 한다.
마귀는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음을 알고, 완악하고 교활함으로 무장하여, 자기뿐만
아니라 자신을 추종하는 모든 세상 사람들을 멸망 길로 데리고 가려 한다.
이 사건들 속에서 시간은 마지막 재림의 순간으로 촉박하게 흐르지만, 한편으로는 왜
그런지 설명을 하기에, 때로는 복음의 초기로 돌아가는 성향이 나타난다.
12-13장은 이러한 시각이 필요하다.
4. 용과 여자의 남은 자손과의 싸움(13-17)
1) 용의 계속되는 교회의 핍박(13-17)
계속된 용의 핍박 속에서도 하나님은 교회를 철저히 보호하신다.
교회가 세상에 동화되거나 굴복하지 않도록 하나님의 방법대로 양육하신다.
하나님의 정한 시간인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 즉 3년 6개월 기간 동안 보호받는다.
본문에서 삼년 육 개월을 문자적 것보다, 하나님이 지키시는 일정한 시간으로 볼 필요가 있다.
다니엘에 나오는 70 이레 중 마지막 한 이레의 기간으로서, 그 중 절반(42개월)을 의미한다.
역사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한 이레가 정확하게 7년을 가리키는 것은 아님을 알아야 한다
(단 12:11,12)’.
큰 독수리의 두 날개는 하나님의 철저한 보호하심을 의미한다.
결코 특정한 장소가 아니다. 그곳은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가는 곳이다(사 31:4, 5).
-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하심이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사람들이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피하나이다(시 36:7)
- 그가 너를 그의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의 날개 아래에 피하리로다(시 91:4)
2) 고난 속에서 양육 받는 교회(15-16) - 구약 교회 성도들을 핍박하는 사건
이 기간 동안 용(사단)은, 성령의 보호아래 있는 교회를 계속해서 핍박한다.
본문은 위기 속에 있는 구약 교회 이야기를 묘사하고 있다.
모세와 아론의 구약교회가 사탄의 충동아래 고난 받는 모습이다.
용은 입에서 토한 강물로 구약교회를 무너뜨리려 하나, 성령은 강한 능력으로 교회를 보호하고
있다.
이것은 ‘하나님이 예비하신 곳’이 다른 세상이나, 악인들이 공격할 수 없는 특정한 장소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다. 사탄의 공격은 무시무시하다.
뱀이 큰물을 통하여 여자를 쓸어버리려고 공격한다.
위급한 순간 땅이 입을 벌려 용의 입에서 토한 강물을 삼켰다.
- 주께서 오른 손을 드신즉, 땅이 그들을 삼켰나이다(출 15:12)
구약 교회는 늘 이러한 어려움에서 보호를 받았다.
고라, 다단, 아비람, 온이 당을 지어 모세와 아론의 구약 교회를 공격했다(민 16:19).
- 땅이 그 입을 열어, 그들과 그들의 집과 고라에게 속한 모든 사람과 그들의 재물을 삼키매,
그들과 그의 모든 재물이 산 채로 스올에 빠지며, 땅이 그 위에 덮이니, 그들이 회중
가운데서 망하니라(민 16:32, 33)
신약 교회 역시 핍박과 환란을 경험하고 있다.
예수님의 중보기도는 교회가 세상에 동화되지 않고, 오히려 세상을 변화시키기를 원하고 있다.
즉 교회가 세상에서 이기기를 원하신다.
-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
5. 교회와 남은 자손(성도)들은 어떤 관계인가? - 신약교회 성도들을 핍박하는 사건
여기서 사탄이 왜 여자의 남은 자손들 – 성도 - 을 공격하는가를 알아야한다.
사탄은 교회와 그곳에 속한 성도들을 구약시대부터 계속해서 공격해 왔었다.
구약교회를 통해 태동된 신약교회 역시 공격받는 대상이다.
본문에서는 사탄의 전술이 이전과 바뀐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종말론적인 상황 즉 마지막
나팔과 관련하여 이야기가 집중되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 흐름을 잊어버리면 해석이 갈팡질팡 하게 된다.
마지막 나팔과 관련하여 재림이 임박했을 때, 사탄은 많은 성도들을 죽인다(계 13:15).
순교자의 수가 차기를 기다리라고 말씀(다섯째 인-계 6:11)하셨던 시간이 다가왔다.
짐승의 우상에게 절하지 않음으로 많은 성도들이 죽임을 당하여 그 수가 차게 되었다.
결국 이 이야기가 여자의 남은 자손에게 집중하는 것은, 마지막 나팔의 중요성을 알리고자
하는 의도가 있다. 왜 성도를 여자의 남은 자손이라 하는가?
언약 백성들과 그 안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방인들이 포함된 신약교회는 예수님을 통하여
한 몸이 되었고(엡 1:10), 아브라함의 언약이 성취된 교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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