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터는 그의 개혁으로 인하여 유대인들이 자신의 편에 설 것을 확신한 것 같습니다.
부패한 교회들을 바로 세우면 유대인들도 복음으로 돌아와 참된 신앙을 추구하지 않을까 한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움직이지 않았고, 루터의 친구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 때 루터는 굉장히 실망한 듯합니다.
유대인들은 회심의 가능성이 없는 민족인가 하는 의구심이 확고하게 자리잡은 것 같습니다.
루터의 이런 생각들은 후대 독일인이나 그리스도인들이 유대인을 박해하는 구실을 제공했습니다.
유대민족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밖은 민족이자 스스로 회개를 거부하는 자들이란 멍에를 씌운 것입니다.
왜 루터는 유대인들을 잘 이해하지 못했을까요?
이해가 안되니 오해가 자리를 잡았고 박해로 연결되는 고리를 제공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유대인들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역사는 다시금 유대인들의 자존심을 회복시켜 준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9-11장을 통해 이것을 자세하게 알려줍니다.
하나님은 장자인 유대인(이스라엘)들의 자존심을 회복시켜줍니다.
그 자존심은 큰 박해를 통해 장자로서의 위상회복이 일어납니다.
적그리스도의 박해를 세상 모든 민족 앞에서 받고, 당당하게 싸우는 일로서
잃어버린 자존심이 회복됩니다.
누구든지 이스라엘의 회복을 알지 못하면 루터처럼 실수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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