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칼빈신학

중보의 두 본성(칼빈)

오은환 2018. 2. 12. 02:30

기독교 강요 2권, 14장은 <중보자의 두 본성>을 다룹니다.    


14장 중보의 두 본성은 어떻게 한 위격을 이루는가? 

이 부분은 조직신학에서 많이 다루었기에 간략하게 요약합니다. 

칼빈은 칼게돈 신조의 정통을 고수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발언은 ...여기는 본질의 혼합이 있는 이 아니고, 위격의 통일이 있었다.

하나님의 아들의 신성은 그의 인성과 결합, 통일되어 두 본성은 각각 그 특이성에 손상을 받지 않은 채 결합하여, 

한 그리스도를 이루었다고 우리는 주장한다"(p.667)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의 특이성을 어거스틴의 영혼과 육체에 빗대어 설명합니다.

"이런 표현들은 사람에게는 두 가지 요소가 결합하여 된 한 인격이 있으며, 이 인격의 기반으로서

두 가지 서로 다른 본질이 있어서 한 인격을 이룬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표현법을 고대 저술가들은 <속성(屬性)의 상통(相通)>이라고 불렀다"(p.668)


14장의 후반부는 두 명의 이단자(네스토리우스와 유티케스)와 칼빈을 괴롭히는 세르베투스의 오류들을

반박합니다. 네스토리우스는 그리스도의 본성을 구별하지 않고 분리시키고자 해서 이중(二重)의 그리스도를

생각하게 했고, 유티게스 그리스도의 인성을 거의 부정할 정도로 경시했습니다.


세르베투스는 그리스도의 하나님의 아들됨을 성령으로 인하여 처녀의 태중에서 났기 때문일 뿐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두 본성을 없애고 그리스도는 약간의 신적 요소와 인간적 요소의 혼합체이지 하나님이며 또 사람이라고는

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세르베투스의 생각으로는, 하나님의 아들은 처음부터 한 관념이었고, 그 때에는 하나님의 본질적 형상인

사람이 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출생에 대한 그의 해석은 다음과 같다. 

곧 아들을 낳겠다는 의지가 처음부터 하나님 안에 있어서 창조 자체에까지 행동으로 연장되었다는 것이다. 


동시에 그는 성령과 말씀을 혼동하여, 하나님이 눈에 보이지 않는 말씀과 성령을 육신과 영혼 속에 분배하셨다고 한다.

간단히 말하면, 그의 생각에는 그리스도를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출산을 대신한다"(p.680)


칼빈은 이런 모든 대적자들의 주장을 더 넓은 관점으로 반박합니다. 

폭넓은 성경지식을 소유하지 않고는 결코 나올 수 없는 심오한 진리입니다.

"나는 한 걸음 더 나아가겠다. 성경에 천사들을 "하나님의 아들들"이라고 부르는데(시82:6),

그들의 높은 위엄은 장차 올 구속에 달린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과 하나님을 화해시키기 위해서

그리스도가 지위상 그들 위에 계셔야 했다. 


나는 이 발언을 간단히 반복해서 인류에게도 적용하겠다. 창조시에 천사들과 사람들은 하나님이 그들의 공통된 

아버지가 되시도록 지어졌다. 따라서 그리스도는 항상 머리가 되시며,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로 

만물의 으뜸이 된다(골1:15)고 한 바울의 발언이 옳다면, 그리스도는 우주 창조 이전에도 하나님의 아들이셨다고

추론하는 것이 옳다고 나는 생각한다"(p.6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