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의 율법과 함므라비 법전 혹은 여러 나라의 법들을 비교하면서
이스라엘이 가진 율법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 그러나 다른 해가 있으면 갚되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덴 것은 덴 것으로, 상하게 한 것은 상함으로, 때린 것은 때림으로 갚을지니라(출21:23-25)
이스라엘 사회에서 이 법은 잘 어느 정도 지켜졌을까요?
어느 정도 준수되었기에 예수님도 이 법을 상기시킵니다.
★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마5:38-39)
구약의 율법을 예수님이 새롭게 해석한 것일까요?
아니면 율법의 원래 모습을 복원한 것일까요?
함브라비 법전에 있는 동일한 말과 율법의 말씀과는 어떤 유사성과 차이점이 있을까요?
단순히 법의 준수와 질서 유지에 목적이 있었을까요?
두 법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존재합니다.
함무라비 법전은 사회 질서 유지를 위한 법으로 인간의 내면을 주관하지는 못합니다.
반면에 율법은 단순히 문자적인 준수가 아니라 성령의 조명하심을 따라 행동하게 하는 동기를 부여합니다.
그러므로 율법을 따르면 단순히 행동으로 죄를 짓지 않았더라도 성령의 조명하심을 거부하거나 벗어나면
그 자체가 죄가 됩니다.
예수님은 이런 해석을 통해 성령을 따라 행하라 명합니다.
마음에 미움을 품거나 악한 언어를 사용하는 것도 살인을 범한 것이고,
마음에 음욕을 품는 것으로도 이미 간음죄를 범했다고 책망합니다.
그러면 생명, 눈, 손, 발, 피해 받음에 대한 동일한 갚음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이것을 오늘날 관점으로 본다면 교회 내의 권징으로 보입니다.
이스라엘은 단순한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의 성민들이 모인 교회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구약교회 혹은 바울처럼 하나님의 교회로 부를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잘못을 범하면 권징을 행합니다.
율법의 원리가 이런 권징에 기초를 둡니다.
교회 권징의 바탕은 사랑입니다.
권징(율법)의 입법자는 하나님이시며 결코 사람이 아닙니다.
율법을 통해 범법자가 받아야 할 대가를 제시한 것은 장차 주님이 받으실 징계를 보여주며,
만일 회개하지 않는다면 영원한 형벌을 받아야만 하는 우리의 모습을 미리 보여준 것이 됩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해석은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의도를 보이신 것입니다.
율법을 행하는 자들은 모두 성령의 감동과 조명을 따라 행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그 원리를 설명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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