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신앙서적

바울신학(제임스 던)

오은환 2018. 7. 11. 14:44

 

바울신학 - 제임스D.G.던(박문재)

 

 

바울신학(제임스 던)

 

1· 프롤로그

1. 바울신학 서설

신약과 기독교 신학 연구에 에드 샌더스의 바울과 팔레스타인 유대교라는 책이 등장하여 연구에 각성을

더해 주었다.

이 책이 주목을 받은 것은 팔레스타인의 유대교의 성격을 신적 은혜의 주도 아래 있는 하나의 종교 체계로

가정하는 것이었다. 바울 서신들이 경우에는 편지라는 그 성격을 도저히 피할 수가 없다.

, 잘 알려져 있는 저자가 매우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잘 알려진 특정한 사람들에게 보내는 의사 전달

수단으로서의 성격을 벗어날 수가 없다는 말이다.

 

바울 신학을 저술한다는 것은 바울이 믿은 바를 그저 기술하는 것만이 아니라 바울과 대화를 하는 것이요,

(필자 자신이 선택한 모델은 대화모델), 바울의 신학이 그리스도인의 사고는 물론 그리스도인의 삶까지도

포괄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요, 종종 이루어지는 대화의 귀결로서 바울의 신학에 기꺼이 경청하는 것이다.

 

2장 하나님과 인류

2. 하나님

바울 신학을 얼마든지 달리 설명할 수도 있겠지만, 바울신학은 과연 하나님에 관한 이야기였으며, 바울과 그의

독자들이 공유하고 있던 믿음들은 철저히 유대적인 것이었다.

창조된 세계가 아직도 하나님에 대하여 말하며(1:19-20), 또한 현재는 비록 허무한 데 굴복해 있으나 장차

마지막 구속에 함께 참여하게 될 것이다(8:19-23).

 

그러므로 하나님의 구원 사역의 절정인 부활의 활동을 그의 창조의 역사와 동격으로 말씀한다는 사실이 전혀

놀라울 것이 없는 것이다.

계속해서 바울의 사상은 창조와 구원의 결합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나는 방향으로(1:15-20 - 20, 만물이

하나님과 화목된다), 또한 창조주의 형상에 합당하도록 갱신하는 방향으로 발전된다(3:10, 4:24)

 

3. 인류

불트만은 바울의 관심사에 대해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 있는 인류, 자기들끼리의 관계속에 있는 남녀들, 인류의

곤경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으로서의 그리스도였다고 말한다.

불트만의 구원의 도리는 곧 남녀들이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되는 것에 관한 것이다.

저자는 육체라는 히브리어나 헬라어 용어의 분석보다는 총체적인 인간, 그리고 상황에 의해서 해석하는 육체

정도로 구분하는 것이 유익하다고 본다

 

3장 정죄 아래 있는 인류

4. 아담

사망이란 창조된 상태의 자연적인 귀결이 아니라고 바울은 강조한다.

사람의 사망에 대한 책임은 아담에게와 다른 한편으로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함으로 죽는다.

온 인류가 죄와 사망에 굴복해 있다. 이는 본성적인 육체성이나 죽을 처지로 창조된 상태를 뜻하는 것만이 아니다.

죄가 그것과 결부되어 있어서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최고의 상태에 못 미치게 만드는 것이다

   

5. 죄와 사망

바울은 죄를 하나의 권세로 이해했다. (하마르티아)는 남녀를 최고의 상태에서 끌어내고 계속해서 목표를 빗나

가도록 만드는 세력혹은 권세를 의미할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죄는 인간으로 하여금 그 피조성과 하나님에

대한 의존성을 잊게 만드는 권세요인간으로 그 참된 본성을 인식하지 못하도록 가로막으며 아담을 속여서 스스로

하나님과 같다고 생각하게 만들고그러므로 자신이 육체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도록 만드는 권세다

 

6. 율법

토라는 노모스보다 훨씬 더 폭넓은 범주이다.

토라는 이스라엘의 계약상 의무들을 규정해 놓은 규례들/계명들/율례들의 모음집을 가리킨다.

이스라엘과 율법의 부정적인 관계에 대한 징후는 율법은 약속의 수여와 그 성취 사이의 일종의 공백기에서

수호천사 역할(보호적 역할)을 할 뿐이다. 율법은 이스라엘의 미성년기 동안에 일종의 섭정을 했다.

 

그리스도의 오심은 하나님의 전체적인 목적에서 절정이자 완성이라는 바울의 인식, 여기서 그리스도는 약속된

자손이다. 아브라함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에서 새 시대가 진행중이다.

하나님의 아들을 보내신 것은 하나님의 숙원이 때가 차매, 정한 때에 성취되었다는 것을 보여 준다.

 

또한 보호적인 기능을 가진 율법은 특히 이스라엘과 관련이 있었던 반면에 약속은 이방인들에게도 적용되는

것이었다. 이방에 대한 축복을 바울은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약속의 근본적인 특징으로 여겼다.

이점과 관련된 바울의 동포들이 그 시기가 도래하였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다는 것을 비판한다.

 

4장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7. 복음

8. 사람 예수

하나님 나라가 예수의 설교에서 중심적인 특징을 이루고 있다는 것은 일반적인 사실이다.

그러나 바울은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거의 말을 하지 않는다.

이것은 하나님 나라라는 범주가 초기 기독교 전승의 공유된 자료들 속에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을 시사해준다.

 

  예수 - 공관복음 바울서신
하나님 나라 105 14
7 57
성 령 13 110

  

바울은 성령을 통해 나타나는 현재적 하나님에 관하여 말한다.

하나님의 종말론적 통치가 성령을 통하여 현재에 이미 나타나고 있다는 것, 이 두 경우에 하나님의 종말론적

통치의 나타남으로 여겨진 것은 성령의 권능 있는 활동이었다.

 

그런 까닭에 바울은 성령을 하나님 나라의 유업의 첫 부분이라고 생각하였다.

달리 말하면 예수와 바울에게 성령은 하나님 나라가 온전한 모습으로 임할 때까지 그 나라의 임재라는 것이다.

이미 현존하는 나라와 장래에 올 나라의 긴장이 어느 정도의 해결을 성령의 체험속에서 찾는 것이 예수와

바울에게서 모두 발견된다는 것은 결코 우연일수가 없다.

바울은 이 점과 관련하여 예수 전승을 알고 있었고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

 

9.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

바울 신학의 구심점은 예수의 죽음과 부활이다. 속죄 행위의 목적은 죄의 제거이다.

파레시스는 간과하다를 의미하지만, 무시하거나 못 보고 지나치는 것이 아니라, 벌하지 않고 방면하는 것,

형벌의 면제라는 좀 더 엄격한 법률적 의미를 지닌다

 

10. 부활하신 주 

11. 선재하신 이 

12. 주께서 오실 때까지

 

5장 구원의 시작

13. 결정적 전환 

14. 이신칭의 

15. 그리스도에의 참여

16. 성령을 받음

하나님의 아들을 보내심으로써 새 시대가 시작되었듯이(때가 차매), 하나님의 아들의 영을 그들의 마음 속에

보내심으로써 그들이 새 시대의 체험 속으로(현재성) 들어가는 일이 시작되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너희가 어떻게 성령을 받았으냐?(3:2) 질문을 한다.

 

성례나 신앙고백에 의한 것이 아닌, 체험으로서 성령을 언급한다.

성령체험이라 주장된 모든 것들을 판단할 근본적인 잣대로서 그리스도 및 그리스도에 대한 증언적 성격을

고수할 정도로 멀리 내다보는 안목을 지니고 있었다

 

17. 세례

 

6장 구원의 과정

18. 종말론적 긴장

핵심은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 사이의 기간에는 두 시대가 서로 겹친다는 것이다.

내세의 시작은 현세로 앞당겨져서, 그리스도의 부활과 함께 시작된다.

이미 일어난 일(부활 사건과 오순절 사건)은 이미 종말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고, 종말이 어떤 것과 같을지를

보여준다.

 

종말론적 긴장은 성령 수여의 경우에도 분명하게 나타난다.

성령은 현재와 미래, 이미와 아직을 연결하는 다리였다.

7:7-25의 기능은 신약학에서 가장 논란이 많은 쟁점들 중의 하나이다.

 

이곳에 대한 분명한 주해적 해법은 또 하나의 종말론적 긴장의 표현이라고 본다.

신자들이 두 시대가 겹치는 시기에 살고 있고, 두 시대에 동시에 속해있기 때문이다.

이 대목은 죄의 권능 아래에 있는 인간을 묘사하고 있다는 인식이다.

14절과 23절의 표현은 너무도 처절해서 이미를 나타낸다는 어떤 암시도 없어 보인다.

 

바울에게 성령 - 육신의 대비는 인류학적 관점이 아니라 종말론적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성도는 전투에서 이겼다는 것이 아니라 접전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성령의 사람들은 여전히 육신과 그 연약함 및 소욕들에 굴복할 위험성에 처해 있다는 것이다.

바울은 고난을 종말론적 긴장에 붙잡혀 있는 모든 자들에게 이미 - 아직의 일부로 보았음을 아주 분명하게

나타내 준다.

로마서 8장의 많은 부분들이 이러한 아직 - 이미사이의 관점에서 볼 때 온전한 주해를 할 수 있다.

 - 저자의 바울신학 이해는 이미와 아직이라는 종말론적 틀을 잘 활용한다.

 

구원의 과정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점점 본받는 과정이다.

복음은 사망에 대한 승리의 약속과 그 성취를 포함하였기 때문에, 예수의 부활은 복음의 핵심이 되었다.

몸의 부활은 십자가와 부활의 직접적인 결과이고 복음의 구성요소이며, 사망에 대한 승리가 복음의 핵심임을

확증한다. 부활의 영광으로 가는 길은 십자가의 고난, 아직의 지속적인 특징인 그리스도의 죽음에 점점 더

합하는 것을 통해서 나아갈 수 있다.

 

바울적인 윤리는 이미와 아직으로부터 출발할 수밖에 없고, 종말론적 긴장으로 가득하다는 말을 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종말론적 긴장이 계속되는 동안에 신자의 배교 가능성은 실제로 항상 존재한다는 것이다.

 

19. 이스라엘

9-11장은 하나님의 경륜속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의 지위를 이해하고자 한 바울의 시도의 진정한 절정으로

보아야 한다여기에서 신학적 쟁점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이다.

이스라엘에 대한 신실하심을 언급하지 않고는 이방인의 신실하심을 이해할 수 없다.

9-11장은 이스라엘과 교회가 주제가 아니라 단지 이스라엘이 주제일 뿐이다.

바울의 나무 비유는 오직 한 나무만이 존재한다.

하나님의 이방인에 대한 신실하심은 이스라엘에 대한 신실하심과 같다.

 

7장 교회 - 여기서 부터는 책을 참고하는 것이 유익하다

20. 그리스도의 몸 

21. 직임과 권한 

22. 주의 만찬

 

8장 신자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23. 동기 부여를 위한 원칙들 

24. 윤리의 실제

 

9장 후기

25 바울 신학에 대한 후기

 

- 2004년도 정리한 글이라 제대로 요약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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