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 나라의 능력 - (풀러 신학교 교수들의 사상 접함)
- 목회의 현장에서 반드시 정립해야만 하는 문제들을 잘 다루었습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펼치는 글
제3의 물결
하나님의 은사와 기적적인 역사를 모두 받아들이기는 하되, 성령 세례를 제2의 축복이 아니라 회심 과정의 일부로
보는 것이 다른 오순절 운동과 다른 점이다. 또한 방언의 은사를 성령 충만의 첫째가는 징표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기 전까지 우리가 체험하게 될 신유의 역사와 영적인 은사들이 결코 완전한 것이
되지 못할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 고전 13:9를 고전 12:8-10: 13:8-12, 요일3:2, 계22:4와 비교해보라)
신유의 은사 및 영적인 은사들과 관련하여 하나님 나라가 지닌 이같은 "이미 - 그러나 아직은(already-not yet)의
갈등 관계를 논하고 있다. 신유의 역사나 영적인 은사들은 그 자체로서는 큰 의미가 없다.
기적들은 사도들 자신이 아니라, 목전에 당면한 가장 중요한 문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과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선포하는 일을 위하여 일어난 것이다. 그 기적들은 복음 선포에 부수된 것이 아니라, 그것의 필수적인 부분이다.
사도들뿐만 아니라 초대교회의 평신도들(스데반, 빌립, 아나니아, 유대계 그리스도인들, 고린도와 갈라디아
그리스도인들등)까지 병든 이들을 낫게 하였다.
하지만 성경은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이 온전케 되기를 원하신다고 해서 우리가 이 시대에 완전한 치유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바울의 말에 의하면, 오늘날의 교회는 신유를 비롯한
영적인 은사들을 단지 부분적으로 밖에 체험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기 전까지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고전13:9, 고전1:6-7, 13:8-10, 요일3:2, 계22:4)-(조지 래드의 영향받음)
신유 등 기적적인 역사들은 하나님 나라의 삶의 일부로서 일어나는 것이므로 우리가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들이 오로지 하나님의 은총의 빛 아래서 행하는 사람들에게만 일어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제1부 표적, 기사에 대한 신학적, 해석학적 접근
1. 구약의 근거들 - 예언자들의 사역에 나타난 표적, 기사와 이적, 이사야 53장의 대속
- 제프리 니이하우스(퓰러 신학교 교수 著)
하나님이 당신의 나라를 확장시켜 나가시기 위해 수많은 표적과 기사를 행하셨음을 구약을 통해 알게 된다.
표적과 기사를 통해 당신의 나라를 확장시키시려는 하나님의 뜻에 대한 `예언과 갈망'이 담겨 있다(욜2:28-29).
구약은 물론이려니와 예수님 자신조차도 치유를 필요로 하는 모든 사람을 낫게 해 주신 것은 아니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이 과연 사람들을 어느 정도까지 치유해 주시리라고 기대할 수 있을 것인가?
여기에 대해 사53장을 통해 그 해답을 찾아본다. 대속의 사역과 죄과의 해방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모든 질병이 자동적으로 치유되는 것이 아니라 부분적이다.
2. 오늘날의 그리스도인과 하나님의 기적적인 역사 - 반론 및 성경을 근거로 한 해답의 제시
- 웨인 그루뎀(트리니티 조직신학 교수)
① 예수님은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여줄 표적이 없느니라(마16:4)'고
말씀하지 않으셨는가? 이 말씀은 오늘날 우리가 기적을 구할 것이 아니라 요나의 표적, 즉 그리스도의 부활을
뜻하는 것만 구하고 그것만을 강조해야 하지 않는가?
- 예수를 시험하던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불신의 마음을 향한 것이다. 참된 그리스도인들에게 적용하는
것이 아니다.
② 오늘날 기적을 행하는 자들을 따르는 것이 위험한 일이 아닐까?
마지막 때에는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예언자들이 기적을 행할 것이고, 미혹케 하는 자들로서 택하신 백성들을
미혹케 하리라 말씀하지 않았는가?
- 성경은 우리가 거짓 선지자들을 구별할 수 있도록 지혜를 제공해 준다(마7:16)
③ 만약에 우리가 오늘날 복음에는 반드시 기적이 수반된다고 말한다면, 그로 인해 복음의 가치가 손상되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죄인들을 구원하는 복음 자체의 능력에 대한 우리의 불신(기적의 도움을 받아야 할 정도로 그리스도의
복음이 허약하다는 생각)을 드러내는 것이 아닐까?
- 이 주장이 옳다면 예수님과 사도들, 평신도들이 행한 기적 역시 복음의 가치를 떨어 뜨렸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신약은 오늘날의 기적이 복음의 증거와 선포에 능력을 더해 준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기적은 복음의 능력을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지닌 능력을 분명히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④ 기적을 통해 무엇이 입증되는가?
- 롬15:18,19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케 하기 위하여 나로 말미암아 말과 일이며 표적과 기사의 능력이며,
성령의 능력으로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 이 일로 인하여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
⑤ 기적은 대체로 사도들만이 행한 것이 아닌가? 물론, 우리는 사도행전에서도 많은 기적들을 보게 되지만,
그 때는 신약성경이 씌어지고 있던 특별한 시기가 아니었는가?
- 사도가 아닌 사람들 - 스데반, 빌립, 아나니아, 갈라디아에 있는 몇몇 교회의 그리스도인들(갈3:5), 그리고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영적인 은사를 받은 일반 그리스도인들에 의해서도 얼마든지 기적적인 사건들이 일어날 수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⑥ 신약 시대에 각종 기적이 일어난 목적은, 새로운 성경(신약)에 권위를 부여하기 위함이 아닌가? 그런데
오늘날에는 더 이상 새로운 성경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일이 없으므로, 기적도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아야 하지
않겠는가?
- 신약 시대의 상황을 고려할 경우, 기적들이 일어난 목적은 새로운 성경에 권위를 부여하기 위함이라기 보다는
복음 선포에 권위를 부여하기 위함이었다고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하다. 빌립이나 스데반이 성경을 집필한 것이
아니다. 고린도 교회에서 역시 아무도 성경을 기록하지 않았다. 기적은 하나님 나라가 도래하였으며 그 백성들에게
복된 나날이 시작되었음을 증거하기 위함이다(마12:28).
⑦ 바울은 기적을 행하는 능력이, 사도로서의 독특한 권위를 드러내기 위해 주어진 '사도의 표'(고후12:12)라고
말하고 있지 않는가?
그리고 그의 그와 같은 말은 오늘날에는 우리가 그러한 표를 기대할 수 없음을 뜻하지 않은가?
- 사도의 표를 단지 기적을 행하는 능력으로 주석한 사람은 거의 없다.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이 '사도의 표'라는 말을 좀더 넓은 의미에서 - 바울의 삶과 그가 행한 사역의 특성들을
포함하는 - 이해하고 있다.
⑧ 히브리서 2장 3절은 우리에게 오로지 사도들만이 기적을 행할 수 있다고 말하지 않는가?
- 여기서는 기적이 주님의 말씀을 직접 들은 사람들을 통해서 행하여진 것으로 기술되어 있다.
하지만 그들만이 기적을 행할 수 있다고는 기록되지 않았다.
⑨ 바울이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고전1:22-23)라는 말을 한 것은, 우리에게
표적을 구할 것이 아니라 단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만 하라는 경고의 말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 바울은 결코 지혜의 타당성을 부인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표적을 행하고,
지혜를 가르쳤기 때문이다. 이들이 구한 것들은 단지 즐기기 위한, 자신들의 적개심과 회의주의를 뒷받침해 줄
표적을 구했으며, 하나님의 지혜가 아니라 이 세상의 지혜를 구했다.
⑩ 만약에 오늘날에도 사람들이 예언을 할 수 있다고 한다면, 이는 사실상 성경 말씀을 새로이 추가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닌가?
그리고 지금 우리가 가진 성경은 완전한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명백하게 잘못된 것이 아닌가?
- 오늘날 예언의 은사는 결코 성경에 새로운 말씀을 덧붙이고 있지 않다. 왜냐하면, 오늘날의 예언은 성경보다는
하위의 권위를 지니고 있으며, 따라서 언제나 성경에 의해 검증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예언의 은사는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 속에 떠오르게 해 주시는 그 무엇인가를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는 행위"라고 정의 할 수 있다
(★고전14:29-31, 14:24-25)
위 구절에서 바울이 말한 계시란, 하나님이 우리 마음 속에 떠오르게 해 주시는 그 무엇을 가리킨다. 예언을 하는
사람은 이 계시에 근거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하게 된다. 이러한 종류의 예언은 절대적인 신적권위를
지니며, 오류가 없는 권위를 지닐수는 없다.
그럼으로 바울은 '다른 이들은 분별할 것이요(고전14:29, 살전5:20-21)'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결코 실수를 하시거나 우리에게 잘못된 계시를 주시는 법은 없다. 그러나 인간의 약함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첫째, 하나님으로부터 온 생각과 내 생각을 완벽하게 구별할 능력이 없다. 둘째, 계시를 정확하게 전달하지 못하게
하는(나의 생각이나 해석이 개입됨) 것들이 존재한다. (욜2:28, 29)
3. 죄와 그 결과에 대한 성경의 견해 - 질병, 귀신들림, 죽음, 자연적인 재앙
- 피터 데이비즈(캐나다, 신학교수, 주석가)
* 약5:16은 죄와 질병을 직접적으로 연관시키고 있다.
* 그리스도인들에게 귀신들림이 일어날 수 있는가? 있다라고 대답한다(행5장 아나니아와 삽비라)
- 마귀의 올무에 빠질 염려가 있다고 한결같이 강조한다(딤전3:6-7, 벧전5:8)
* 이 시대에는 어떠한 영역에서건 죄의 결과들이 완전히 치유될 수는 없으며, 비록 모든 영역에서 '내세의 능력을
맛볼'(히6:5)수는 있다 하더라도 현재와 미래 사이의 긴장 관계가 항상 존재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여야 한다.
4. 신약이 보여 주는 표적과 기사 - 개리 그레이그 - 퓰러 히브리어 교수
* 바울은 성령의 능력이 수반되는 복음 선포에 관하여 말하고 있다 - 살전1:5, 2:13, 고전2:4-5, 고후6:7, 13:3,
골1:29, 딤후1:8
*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는 치유의 기적들이 하나님의 용서와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임을 인정하고 있다
(알렌 리차드슨)
* 치유와 구원의 밀접한 관계는 복음전승의 가장 커다란 특징들 가운데 하나이다.
실제로 치유의 기적은 하나님의 용서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사건이었다.
* 여러 학자들은 예수님의 사역에 나타난 기적적인 치유의 역사들이 하나님 나라의 도래와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통치를 보여 주기 위한 것이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한 역사들은 하나님의 은총을
드러내 보여 주는 징표인 동시에,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의해 이루어진 죄의 용서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이었다.
* 모든 그리스도인은 예언을 하거나 병든 사람들을 기적적으로 치유할 잠재적인 능력을 갖게 된다.
여기서 바로 만인 사제직과 평신도 사역의 원리를 발견할 수 있다(돈 윌리엄스)
5. 부흥집회와 성령의 능력 - 신유 등 성령의 은사들을 토대로 한 사역에 대한 정신의학적 분석
- 존 화이트(선교사, 정신과 의사)
★ 하나님의 능력이 드러날 때 나타나는 현상들
① 두려움과 경외감
② 슬픔과 애도
③ 형언할 수 없는 기쁨
④ 몸의 떨림과 흔들림
⑤ 넘어짐/ 튀어오름
⑥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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