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신앙서적

바울의 율법과 복음

오은환 2018. 7. 10. 23:01

    

 

 

저자 홍인규 교수는 현재 천안대학교 교수이며,

"로마서 어떻게 읽을 것인가

"로 우리에게 친숙한 인물이다.

그의 책을 읽으며 참 정직한 학자라는 느낌이 온다. 

그래서 로마서에 관련된 책을 심도있게 보았다.

 

'바울의 율법과 복음'은 서문에서 나오듯이 그의 답답함에 대한 연구의 결실이다. 누구나 그리스도인이라면

율법과 복음의 관계를 이해해야만 하는데 실제적으로 다른 저자들의 관점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고 결국

그는 이 부분에 대해 직접 달려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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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까지 영향력있는 해석들

 1. 수많은 학자들은 율법주의적으로 사용된 율법과 하나님의 뜻의 표현으로서의 율법을 구분하거나, 의식법과

도덕법을 구분하거나, 또는 모세의 토라와 메시아의 토라 사이를 구분하여, 바울의 율법관에서 어떤 일관성을

찾으려 했다.(서철원 교수의 복음과 율법도 이러한 분류이다)

 

 2. 바울의 의견에 불일치가 있다는 견해이다.

- 갈라디아서에서는 자유방종주의자로서 율법을 완전히 비난했다

- 고린도전서에서는 율법주의자처럼 보인다

- 로마서에서는 율법의 구원 능력은 부인하지만 신적 기원과 믿는 자의 생활 속에서의 긍정적 역할은 인정한다

 

 3. 샌더스의 일반적인 견해로서 바울의 율법관은 내적 긴장과 불일치가 보인다는 것이다.

    레이제넨 역시 그렇다. "모순과 긴장"은 율법에 대한 바울 신학에서 항구적인 특징이다.

 

 4. 던의 견해로서, 바울은 율법 자체를 배척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가 공격한 것은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를

    구분하는 율법의 사회적 기능이다. 율법의 행위라는 어구는 일반적인 선한 행위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특수하게 이스라엘의 정체의 독특성에  날카롭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요구사항들"을 가리킨다.

    이러한 사회적인 것을 제외하면 율법은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사랑 안에서 성취된다.

 

 5. 웨스터 홈의 견해로서 루터의 바울 이해를 부활시키려 한다. 율법을 지키는 일은 이스라엘의 구원의 길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러나 바울은 인간이 율법을 완전히 지킬 수 없기 때문에 율법의 행위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대조시키고 있다. 그는 율법이 그리스도에 의해 완전히 대치되었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대개 첫 번째 견해를 주로 따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5번은 서철원 교수님의 책 속에 비판되어 있고,

2, 3 번은   성경의 무오성에 근거해서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3번 역시 신구약의 통일성 및 구원의 동일성에

비추어보면 결코   받아 들일 수 없는 견해인 것 같습니다 - 저의 견해)

 

* 저자의 견해 

1. 저자는 갈라디아서를 분석하여 바울의 율법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다.

2. 저자는 율법에 대해서 세분해서 나누지 않고, 율법은 약속을 대치할 수 없음을 강조한다.

3. 율법은 아무도 지키지 못하기에 이스라엘은 저주 아래 있다.4. 오직 그리스도를 소망하는 것이 이스라엘의

    행복이다.

5. 신약의 성도들은 율법의 조항들을 지키는것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율법의 목적을 행한다.

6. 율법의 목적은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행하는 것인데, 사랑은 성령의 열매로서 결국

   성령의 인도하심 속에서 성도는 사랑의 열매를 맺음으로 율법이 완성된다.

 

* 평가 

참으로 훌륭한 견해인데, 조금 아쉬움이 남는다.

위의 견해중 3,4번에 문제점이 발생한다.  구약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구약성도들이 율법아래 있기에 불행하다고

보는 견해이다. 이스라엘의 행복은 현실적이지 않고 오직 예수님만을 바라보는 것으로 한정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생각해보아야 한다. 구약에서 하나님은 율법만 주시고 지킬 힘을 주지 않았다는 견해에 대해서

심각하게 재고해야 한다. 이런 문제들은 신구약의 통일성 문제(특별히 구원)에 대해 심각한 타격을 주고 있다.

 

구약 성도들은 자력으로 구원을 받았다면 얼마나 비성경적인가?성령이 없이 복음을 알 수 있는가? 아니면 율법이

성령의 역할을 했다는 것인가?성령의 역사 없이 고독한 삶을 살았다면 구약 성도들은 얼마나 불행한 것인가?

또한 성령의 역사 없이 구원의 길에 도달했다면 그들 자신은 얼마나 위대한가?구약 성경은 율법을 묵상함에 즐거워

했던 것은 스스로의 위대함을 드러내는가?(시편1, 119편)

 

이같은 문제를 보면서 우리는

구약시대에 역사한 성령의 역할을 이해해야만 참으로 율법을 온전히 이해하며그 역할을 이해할 수 있다.

성령은 계시의 말씀을 넘어서지 않는다. 즉 구속경륜을 예비하며 그 길을 조명해 왔다는 것이다. 그 시대에

적합하게 성령의 조명은 그 역할을 한정한다. 그러면서 소망의 날들을 바라보게 하신다.

예를 들어, 히9:8절은 첫 장막이 서 있을 동안에는 성소에 들어가는 길이 아직 나타나지 않았는데 그것은 바로

성령이 조명함이 바로 거기까지 임을 말해준다. 그 시대에는 그정도이며,  완전하지는 않았지만 충족되었다는

것이다.

 

왜 구약성도들에게 성령의 역할을 찾는것을 두려워하는 것인가?

요14:16절은,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예수님이 보내실 보혜사 이전에 다른 이름으로(성부) 활동한 성령의 역사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문제를 

보지 못하면 영원히 복음과 율법의 문제를 해결 할 수 없다고 본다..

 

행위를 통해 종말론적 심판이 일어나는것은 이신칭의와 다른 것이 아니다. 율법의 목적이나 완성은 사랑을 통한

행함이다. 즉 성령의 역사를 통해 사랑을 행할 수 있기에 성령의 첫 열매는 사랑이며,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

(율법)이 없다고 했다. 즉 성령이나 율법은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통해 율법이 성취됨을 볼 수있다.

 

우리가 종말론적인 행위에 대하여 문책받는 것은 우리가 스스로 행하지 않음에 대한 댓가로서의 형벌이 아니라,

우리에게 주신 성령을 거부한 것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이 된다. 이것에 대한 정립이 있을 때 구약성도들에 대한

선지자들의 책망의 심각성을 바로 알게 된다.

 

율법과 복음의 이해는 우리 모두에게 매우 중요한 사항이다. 성도들의 구원과 생활에 막대한 영향을 주기 때문에

우리들이 깊이 연구하여 확고한 메시지를 전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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