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치 않았던 바벨론 침략으로 많은 유대인들이 흩어졌습니다.
떠났던 고국에 다시 귀환 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결단이 따릅니다.
강대국들의 통치 아래 피폐함을 당한 이스라엘은 흩어져야 했고, 그 결과
많은 유대인들이 페르시아뿐만 아니라 지중해 연안의 여러 국가들에 정착합니다.
유대인들의 현지화는 유일신만을 섬기는 예배와 신앙에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했습니다.
특별히 잊어져가는 히브리어를 대신해 현지어로의 성경번역이 필요했습니다.
본토 팔레스타인(이스라엘)에서도 히브리어는 죽어갔고 아람어가 통용되었습니다.
그래서 팔레스타인 유대인들은 구약성경을 아람어로 번역했습니다.
이 번역을 '탈굼(Targumim)'이라 부릅니다.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많이 살고 있었던 알렉산드리아에서 역시 구약성경이 헬라어로 번역되었습니다.
주변의 지식층을 대상으로 성경을 알리려는 목적이 컸습니다.
72명의 장로들이 이 일을 시작했는데 번역본의 이름은 '70 인역'이라 부릅니다.
시간적인 간격은 있지만 이집트를 방문했던 플라톤과 같은 헬라 철학자들이 구약성경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는지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플라톤 철학을 보면 어느 정도 기독교와 유사한 면도 있고, 한편으로는
이방 사람들이 가진 성경과는 전혀 다른 사상들이 주를 이루기도 하기에 선뜻 어떤 결론을 내리기가 어렵고,
또 그런 결론이 어떤 가치를 가질지 논쟁으로 시간을 허비하는 것은 지혜가 아닐 것입니다.
"필로는 플라톤과 아카데미학파 학자들이 모세보다는 훨씬 후대임을 지적하고, 또한 이들이 성경적 내용을
가져다가 자신들의 중요한 가르침으로 삼았던 사실을 볼 때에, 성경에 대한 지식을 갖고 있었음이 틀림
없다고 보았다"(기독교 사상사, 후스토 L. 곤잘레스, p.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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