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은 구약성경에 나오는 여호와의 사자를 그리스도로 보았습니다.
그의 영향 아래서 개혁주의 많은 신학자들과 목회자들 역시 동일한 관점을 지녔습니다.
구약에 나오는 사자는 모두 하나님 혹은 여호와의 호칭 아래 소유격으로 표현됩니다.
모두 동일한 의미를 지닙니다.
* 하나님의 사자 = 내 사자 = 여호와의 사자
칼빈이 여호와의 사자를 중시여기며 그리스도라고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언약적 관점에서 이 문제를 다루면서 구약 백성들의 구원과 관련을 찾습니다.
* 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여호와의 사자>께서 이 아이들에게 복을 주시오며,
이들로 내 이름과 내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름으로 칭하게 하시오며,
이들이 세상에서 번식되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창48:16)
야곱의 고백은 단순히 한 사람의 고백이 아니라 구약 모든 성도들의 신앙고백과 동일합니다.
성도의 모든 삶에 관여하며, 실질적으로 역사하여 환난과 위험에서 건지어 구원하신 분이
누구인지 아는 것은 신앙의 핵심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의 신앙과도 직결됩니다.
* 그들의 모든 환난에 동참하사 <자기 앞의 사자로 하여금> 그들을 구원하시며,
그의 사랑과 그의 자비로 그들을 구원하시고, 옛적 모든 날에 그들을 드시며 안으셨으나(사63:9)
왜 칼빈은 여호와의 사자를 그리스도로만 보고 성령은 전혀 인식하지 못했을까요?
구약에 자주 등장하는 사자 혹은 여호와의 사자(말라크)는 문맥에 따라 보면 됩니다.
하나님의 명을 행하는 존재로서 사자는 누구일까요?
* 천사들 - 쉽게 찾을 수 있음
* 사람들 - 전령, 제사장(말2:7), 선지자
* 성령 - 출23:20-22 = 사63:9-14
* 그리스도 - 언약의 사자(말3:1) - 오직 한군데만 사용됨
이렇게 세 존재가 사용됩니다.
그럼 예수님은 구약에서 사자로 사용된 적은 없나요?
딱 한군데 묘사되어 있습니다.
미래에 오실 사자입니다.
* ... 또 너희가 구하는 바 주가 갑자기 그의 성전에 임하시리니
곧 너희가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가 임하실 것이라(말3:1)
구약에 예수님이 들락날락 했다는 말은 모두 오해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품 속에 있었다가 성육신으로 우리들에게 나타났다는 것이
성경적인 정설입니다.
*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요1:18)
사자가 누구인지는 문맥과 문법을 따라 보시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칼빈이 좀 더 다양하게 <사자>를 보았다면 더 좋은 해석이 나오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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