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칼빈신학

열정과 본능 차이

오은환 2019. 9. 14. 12:58

사람에게 열정은 너무도 소중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열정보다는 본능에 가까운 삶을 살고 생을 마감합니다.

열정과 본능은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열정은 어떤 일을 추진하는 동력이 됩니다.

열정을 신앙적으로 보면 성령의 영감주심과 그 결과 인간의 노력입니다.

영감이 있어야 노력이란 힘이 발생합니다. 

 

본능은 생존하려는 버릇과 같습니다.

버릇은 학습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무심코 행하는 것입니다.

급박한 상황에서 본능은 움직임의 동력이 되지만 평범한 상태에서는 느낌이 미미합니다.

 

칼빈은 역사에 기록된 다른 천제들처럼 독특한 사람일까요?

그 역시 당시의 상황의 거슬리기 어려운 한 사람에 불과했습니다.

카톨릭의 부패한 제도를 따라갔던 어린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런 그가 크게 변화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부패한 카돌릭에서 벗어나게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어렸을 때부터 읽고 공부했던 성경 속에서 성령의 역사하심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령의 인도하심은 우리가 측량하기 어렵습니다.

 

자신과 가족들과 동료들이 카돌릭에 의해 죽음에 직면했을 때 가까스로 피한 칼빈은

자신의 가족이 그들에 의해 죽임 당한 것을 보았습니다.

비진리가 진리를 파괴하며 죽이는 것을 본 그는 글을 써야겠다는 열망에 사로잡혔습니다.

 

젊은 26세의 나이에 성경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기독교 강요>를 저술했습니다.

동생과 바른 기독교인들의 억울한 죽음 앞에서 진리에 대한 불같은 열정이 그를 붙잡았습니다.

사실 기독교 강요는 가족과 동료 그리스도인들의 피로 쓰여진 책입니다.

 

평탄한 시기에는 영웅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흔히 난세에 영웅이 태어난다는 말이 틀리지 않습니다.

칼빈 역시 회오리 바람 속에서 그가 신학자로서 출발을 시작한 것입니다.

 

칼빈은 성령의 사람입니다.

비록 그가 제대로 표현을 안했을지라도 구약 속에서도 어느 정도 깊이있는

성령의 역사를 보았습니다.


신복윤 교수는 칼빈의 구약을 제대로 이해한 최고의 신학자로 평가합니다.

올바른 신학이 열정을 통해 당대와 후대에 귀한 선물로 배달되었습니다.

칼빈의 신학을 함부로 폄하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미비한 부분은 더 보완하고 발전시키는 것이 후대의 몫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