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를 싫어하는 자들은 목회자나 선교사가 너무 돈을 밝힌다고 힐난하면서
고린도 지역에서의 바울처럼 자비량 선교를 하라 합니다.
* 생업이 같으므로 함께 살며 <일을 하니> 그 생업은 천막을 만드는 것이더라(행18:3)
바울의 자비량 선교가 모범적인 방향일까요?
아니면 피치못할 사정으로 발생한 것일까요?
고린도 지역에 있으면서도 바울은 교회에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일을 했습니다.
* 우리가 먹고 마실 권리가 없겠느냐, 우리가 다른 사도들과 주의 형제들과 게바와 같이 자매 된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리가 없겠느냐, 어찌 나와 바나바만 일하지 아니할 권리가 없겠느냐(고전9:4-6)
만일 바울의 자비량 선교(목회)가 가장 올바른 길이라면 나머지 사도들과
복음전도자들은 차선책을 택했을까요?
아닙니다.
바울도 다른 사도들과 전도자들처럼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복음 전하는데 집중하려고 했지만 아직 초신자들인 이방 신자들이
시험에 들어 넘어질까봐 그 짐을 지우지 않았던 것입니다.
성전에서 일했던 자들이 그 안에서 나온 것으로 사는 것처럼, 바울 역시 복음을 전하므로
그 안에서 생활하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 성전의 일을 하는 이들은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으며, 제단에서 섬기는 이들은 제단과 함께
나누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이와 같이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고전9:13-14)
오늘날 교회를 파괴하려는 자들은 모든 것에 꼬투리를 잡아 분란을 일으킵니다.
목회자나 선교사들을 사역에 집중하지 못하게 잘못된 이론들로 미혹합니다.
자비량 선교(목회)는 상황과 필요에 따라 하면 됩니다.
이런 일로 다툴 것이 못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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