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적인 서구 신학자들은 창세기의 뱀이 말을 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이런 기록을 역사가 아니라 설화로 불렀습니다.
성경의 처음 시작을 역사가 아닌 전해내려오는 이야기 정도로 생각했으니
나머지 부분을 마음대로 손대는 것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타락 전에 하나님은 피조물들을 어떤 상태로 만드셨을까요?
피조물들끼리 어떻게 소통하게 하셨을까요?
하나님의 계획을 알게 되면 피조세계를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만들면서 모든 피조물들을 관리할 수 있는 책임과 능력을 주셨습니다.
*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창1:26)
인간이 어떻게 나머지 생명을 가진 피조물들을 다스릴 수 있을까요?
다스림의 기본은 소통입니다.
하나님과 인간 역시 언어를 통해 소통을 합니다.
인간 역시 다른 피조물들과 언어를 통해 소통합니다.
뱀이 말을 한 것은 대단한 것이 아니라 평범한 사실입니다.
다른 모든 피조물들도 인간과 소통할 수 있는 언어를 구사 할 수 있었습니다.
뱀이 다른 피조물들과 비교해서 하나님이 만든 들짐승 중에 가장 큰 지혜를 가진 것입니다.
*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창3:1)
'간교'하다는 말은 나쁜 뜻이 전혀 없습니다(창1:31).
오히려 가장 지혜롭다는 의미입니다.
사탄이 뱀을 이용한 것은 하와를 가장 미혹할 수 있는 지혜있는 동물이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뱀이나 다른 들짐승들이나 모든 피조물들이 아담이 하는 말을 다 이해했다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은 하나님이 대충 만든 곳이 아닙니다.
하늘의 원형(새 예루살렘 성)을 본떠 만든 것입니다.
에덴동산의 뱀은 사탄이 아닙니다.
단지 사탄이 뱀을 이용한 것입니다.
인간과 동물의 언어는 아담의 타락으로 끊겼습니다.
노아와 맺은 언약을 보면 확연하게 드러납니다.
*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바다의 모든 물고기가 너희를 두려워하며,
너희를 무서워하리니...(창9:2)
노아에게 주신 언약을 보면 피조물들을 다스리라는 조항이 없습니다.
오히려 서로 반목하고 두려워하여 사귈 수 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바벨탑 사건을 통해 인간과 인간 사이에 언어 또한 단절되었습니다.
이렇게 언어의 단절은 두 번에 걸쳐 일어났습니다.
주님이 오시면 이런 단절된 언어들은 다시 회복됩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처럼 사자와 소, 뱀과 어린이, 이리와 어린 양, 표범과 염소, 암소와 곰이 함께 뛰놀며
노래하는 것은 에덴동산의 모습을 회복하는 것과 같습니다.
어린 아이가 이 모든 것을 다스립니다.
*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사11:6)
요한계시록은 모든 피조물들이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것은 또 하나의 예배입니다.
에덴동산의 아담과 동물들은 함께 하나님께 예배드렸습니다.
아담은 최초의 제사장의 모습입니다.
에덴동산은 교회의 시작이며, 새 예루살렘 성처럼 모든 피조물들이 함께 참여하는
멋진 교회와 예배의 장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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