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서신서

로마서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오은환 2014. 3. 15. 21:35

 

서신서를 가장 잘 이해하는 방법은 편지는 쓴 이유와 목적을 찾으면 됩니다.

수신자인 교회나 개인에게 어떤 문제들이 있어서 편지를 쓰게 되었는지 알아보아야 합니다.

로마서 역시 이런 방법으로 접근해야 올바른 해석을 할 수 있습니다.

방대한 논문이라는 취지로 보면, 편지를 쓴 바울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는 글이 됩니다.

 

1. 편지를 쓴 이유와 목적

로마 교회는 오순절 성령 강림과 더불어 태동되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입니다.

오순절 날 예루살렘에 왔던 경건한 무리들이 성령강림을 보면서 복음을 받아들였다는 견해가 대세를

이룹니다(행2:10). 선교사 바울마저 이 곳에서 복음을 전했단 이야기가 없습니다.

 

바울이나 베드로가 로마에 방문하기 전 이미 교회가 서 있었습니다.

로마교회는 바울에 대해서 이야기는 들었지만 그의 사상을 받을 만한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소문은 들었으나 내용은 모른다고 로마 교우들은 말하고 있습니다(행28:21-22).

 

로마교회는 성장했지만 세계의 수도만큼의 힘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AD 49년, 글라우디오 황제는 모든 유대인들을 로마에서 추방시켰습니다(행18:2).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역시 그런 연유로 로마를 떠나 고린도에 왔다가 바울을 만났습니다(행18장).

 

다수의 유대인들과 소수의 이방인들로 구성되었던 로마교회가 글라우디오 칙령(49년)으로 구조적인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이제는 이방인들이 주축을 이루고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54년 글라우디오 황제의 죽음으로 차츰 이 칙령이 유명무실 해졌습니다.

유대인들은 로마로 돌아갈 수 있었고, 서서히 떠났던 유대 그리스도인들이 로마로 귀환했습니다.

 

로마서가 기록된 57년경에는 상당수의 유대인들이 로마로 돌아오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롬16장).

그렇지만 여전히 로마교회는 다수의 이방인들과 소수의 유대인들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철과 진흙처럼 잘 섞이지 않았던 로마교회가 바울의 눈에는 안타까웠습니다.

로마교회의 성장은 세계선교의 틀을 놓을 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롬15:22-24)

바울은 로마교회를 통해 땅 끝이라 여겼던 서바나(스페인)까지 복음을 전파하고자 했습니다(롬15:23).

 

로마교회는 어떻게 하나가 될 수 있을까요? 바울이 나누고자 했고, 편지를 쓰고자 했던 목적입니다.

자신이 가진 귀한 은사를 나누면 로마교회가 든든히 서게 될 것을 확신했습니다.

 

2. 로마교회에 필요한 복음과 이해

로마교회는 먼저 이방 그리스도인들이 유대인 출신 그리스도인들을 오해한데서 많은 문제들이 일어났습니다.

또한 유대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을 이해하는 폭이 온전하지 못해서, 구약성경의 율법을 온전히 성취하신 

그리스도를 이해함과 그것을 삶으로 전환하는 일에 결핍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바울은 이 문제에 대해 복음이 무엇인가를 통해 두 부류가 다른 점이 많은 것보다는 복음 안에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고 포용할 수 있음을 알려줍니다.

깊이 생각하고 가장 많은 고민을 했던 <바울이 본 이스라엘의 미래>에 대해 간략하게 나누었으면 합니다.

 

 1) 유대인이 완전히 버림받은 것이 아닙니다.

유대인에 대해 종종 오해하는 것은 구약 성도들에 비해 신약 성도들의 숫자가 급감했다고 보는 견해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기에 그들은 이제 하나님의 나라를 빼앗기고, 극히 적은 수만 구원에 이르게 된다는

논리입니다.

 

바울은 그렇지 않다고 강력하게 주장하면서 구약성경을 예로 보여줍니다.

유대인이 비록 바닷가의 모래 같이 많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받는다 말합니다(롬9:27).

반대로 구원받은 사람을 찾기 어려운 시절에도 없는 것이 아니라, 남은 자가 있다는 것입니다(롬9:29).

그들이 진정 유대인이며 성도라는 견해입니다.

바울은 더 나아가서 신약에서 유대인들이 비록 잘 보이지 않을지라도 여전히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들이 

남아 있다는 것을 증거합니다.

 

* 그런즉 이와 같이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롬11:5)

 

 2) 유대인이 넘어진 이유는 이방인들을 위함 입니다

* 복음으로 하면 그들이 너희로 말미암아 원수 된 자요,택하심으로 하면 조상들로 말미암아 사랑을 입은

   자라(롬11:28)

 

이해하기 어려운 것 중의 하나가 왜 유대인의 넘어짐이 이방인들을 위함인가 입니다.

유대인이 넘어지지 않았다면 이방인들에게는 어떤 변화가 있었고, 현재와 다른 어떤 일들이 일어났을까요?

많은 것들이 있었겠지만 그 중 하나를 본다면 무엇일까요?

대표적으로 유대인들만 우선적으로 맡았던 말씀이 이제는 이방인들도 풍성하게 가진 것입니다.

 

*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냐....범사에 많으니 우선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음이라(롬3:1-2)

* 그들의 넘어짐이 세상의 풍성함이 되며, 그들의 실패가 이방인의 풍성함이 되거든,하물며 그들의

   충만함이리요(롬11:12)

 

 3) 유대인들이 넘어져도 하나님은 그들을 위해 여전히 일하십니다

예정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선택함을 받은 자와 버려둠을 받은 자(유기)에 대해

이성과 신앙 사이에서 오해가 많습니다. 예정은 하나님의 긍휼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바울사도는 로마서 9-11장을 통해 하나님의 긍휼을 무척 강조합니다.

자녀삼기 위해 우리를 긍휼이 여겼다는 것이 예정을 통한 선택이라 말씀합니다.

 

*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롬9:15)

 

하나님을 불의한 자로 여기는 자를 바울은 책망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악한 자들을 위해서도 여전히 일하고 계심을 보여줍니다.

그들을 사랑하시기에 하루 종일 두 손을 벌리고 돌아오라고 부르고 계십니다.

 

* 이스라엘에 대하여 이르되, 순종하지 아니하고 거슬러 말하는 백성에게내가 <종일 내 손을 벌렸노라> 

   하였느니라(롬10:21) 

 

예정에서 선택은 이미 죽었던 자들에게 보이신 긍휼입니다. 살려고 발버둥치는 자들을 외면한 것이

아닙니다. <이미 죄와 허물로 죽었던 자들에게 하나님의 긍휼을 보이신 것> 입니다.

 

*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엡2:1)

 

나머지 사람들에게도 하나님의 사랑을 감추어 놓은 것은 절대 아닙니다.

여전히 두 팔을 벌리고, 하나님 아버지 품으로 돌아오라고 부르고 계십니다.

 

 4) 이스라엘에 대한 배려

이방인의 구원을 위한 충만한 수가 찼을 때 유대인들의 많은 남은자들이 돌아옵니다.

이들 역시 하나님의 긍휼을 바탕으로 돌아오게 됩니다(롬11:31)

토기장이 되시는 하나님의 경륜 속에서 이루어지기에 우리는 순종해야 합니다.

 

 5) 모세의 노래

신명기 32장은 모세의 노래라 불립니다.

 

* 그러므로 이제 너희는 이 노래를 써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가르쳐 그들의 입으로 부르게 하여,

   이 노래로 나를 위하여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라(신31:19)

 

노래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면, <이스라엘의 타락과 하나님 긍휼이 여김>입니다(신32:36).

이스라엘을 회복시킬 뿐만 아니라 이방인들의 돌아옴을 예견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통해 복음이 온 이방 나라들 가운데 전파될 것을 말합니다.

 

* 너희 민족들아 주의 백성과 즐거워하라...(신32:43)

 

 6) 바울의 노래

바울은 복음을 통해 하나님의 경륜을 알았습니다.

이방인들이나 유대인들이 서로 반목할 필요가 없고, 결국 유대인이나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서로 차게 됨을 노래합니다(롬11:25-26).

모세가 예언했던 노래가사를 바울이 부른 것입니다(약속과 성취).

모세가 한 번 말한 반면에, 바울은 너무도 감격해서 세 번씩이나 반복합니다.

 

❶ 그러므로 내가 열방 중에서 주께 감사하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로다(롬15:9)

❷ 열방들아 주의 백성과 함께 즐거워하라(롬15:10)

❸ 모든 열방들아 주를 찬양하며, 모든 백성들아 그를 찬송하라(롬15:11)

 

로마교회의 분열의 원인은 복음을 온전히 알지 못한데서 생긴 오해의 산물이었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통해 온전히 이해하게 하여 로마교회의 아픔을 치유하였습니다.

오해의 치료는 온전한 복음의 이해가 있는 그 곳에서 일어납니다.

 

바울은 자신만이 아니라 온 로마교회와, 장차 주님의 재림이 일어나기 전 온 세상 교회들을 향해

이 노래를 부르라 재촉합니다. 세상 모든 교회들로 하여금 이스라엘과 더불어 화평할 것을 촉구합니다.

 

이방 모든 성도들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 목소리로 하나님의 구속 경륜의 환희를 노래할 날을

꿈꾸어야 합니다.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 우리는 이 모든 약속된 예언이 성취됨을 보게 될 것입니다.

 

* 보좌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시되, 하나님의 종들 곧 그를 경외하는 너희들아,

   작은 자나 큰 자나 다 우리 하나님께 찬송하라 하더라(계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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