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 전서 14장은 특별히 두 가지 은사를 다룹니다.
방언과 예언의 은사입니다.
이 두 은사를 크게 다룬 것은 고린도 교회 안에서 문제를 일으켰던 원인을 제공한데서
찾을 수 있습니다.
구약시대에도 예언의 은사가 있었습니다.
사울 왕도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새 사람이 되어 예언을 했습니다(삼상10:6).
모세를 도왔던 칠십인 장로들 역시 성령의 은사로서 예언을 했습니다(민11:25).
모세는 모든 사람들이 선지자들처럼 예언 하기를 원했습니다(민11:29).
바울 역시 모든 사람들이 예언 하기를 구하라고 합니다(고전14:5).
그러나 구약시대에는 방언의 은사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주로 복음이 이스라엘이란 나라 안에서만 움직였기에 방언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구속사역을 이루신 후 이방인들과 접촉할 때 방언의 은사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1. 오순절 날 나타난 방언
※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행2:4)
마가의 다락방에 있던 120여명의 사람들이 방언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입은 결과입니다.
그들이 말할 때 들었던 각 나라의 숫자를 <천하 각국>으로 표현합니다(행2:5).
구체적으로 바대인, 메대인, 엘람인, 메소보다미아, 유대, 갑바도니아, 본도와 아시아,
브르기아, 밤빌리라, 애굽, 리비야 여러 지방, 로마, 그레데인, 아라비아인 등으로
최소 15개 이상의 방언이 나온 것입니다(행2:9-11).
단순한 어부였던 갈릴리 사람들이 배워본 적이 없는 자신들의 본토 방언을 쏟아내자
크게 놀랐습니다(행2:7-8).
이들에게 방언을 주시고 듣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복음이 이방인들에게 전파됨의 증표로
주신 것입니다.
※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행2:11)
2. 이방인들이 히브리어로 말한 방언
※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놀라니,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을 높임>을 들음이러라(행10:44-46)
고넬료는 친척들과 친구들을 모아 놓고 베드로가 오기를 기다렸습니다(행10:24).
이들은 베드로가 전한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받아들이자 성령이 각 사람에게 내려왔습니다(행10:44).
고넬료와 친척들과 친구들은 방언으로 <하나님을 높이는 말>을 했습니다.
그들에게 낯설은 히브리어가 자유자재로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이방인들이 유대인들 앞에서 히브리어로 복음을 높인 것입니다.
마치 바울이 익숙하지 않은 히브리어로 백성들 앞에서 증거하는 것과 유사합니다(행22;2).
여기서 방언은 복음이 예루살렘과 사마리아를 넘어 이방인들에게 확실하게 전해졌음을
확인하는 역할을 합니다(행1:8).
3. 복음 전도자들이 말한 방언
※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모두 열두 사람쯤 되니라(행19:6-7)
바울이 에베소에서 만난 열두 복음전도자들은 아볼로처럼(행11:24) 디아스포라 유대인이거나,
이방인들로 추정되는 경건한 무리들로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지역에서 온 무리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단지 요한의 세례만 알 뿐입니다(행19:3).
바울의 안수로 성령이 임하여 방언과 예언을 했습니다.
그들이 말한 방언이 어느 나라의 말인지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 장소에 있었던 자들의 지방 언어들로 보입니다.
특이한 것은 방언과 더불어 예언도 했습니다.
방언과 예언이 서로 연관이 있듯 같이 나옵니다.
하지만 오순절 날 나타난 방언도 예언과 같이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이 곧 예언의 한 부류입니다.
고넬료 가정에서 일어났던 <하나님을 높임>도 예언의 한 부분으로 보입니다.
중요한 것은 위의 세 가지 장소에서 일어났던 방언은 모두 지역의 언어들입니다.
세 곳의 방언은 모두 복음이 확실하게 전해졌음을 증거하는 역할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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