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은 이한수 교수님이 신학지남 1994년 여름호에 올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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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장로교회의 성령론의 한계에 대해 많은 지적들이 있다.
성령론과 관련하여 한국교회가 안고 있는 두 가지 문제는 성령세례와 영성 문제이다.
실제로 이 두 문제는 성령론적인 전망에서 볼 때 한 문제이다.
1. 통속적인 영성 개념을 형성케 만든 뿌리들
한국교회의 통속적인 영성 개념을 형성케 만든 주요한 역사적 요인은 1903년 이후 평양과 원산을
중심으로 시작된 부흥운동과 깊은 관련이 있다.
1) 내세 지향적 부흥운동(길선주 목사 주도)
일제의 철권통치가 교회를 압박함으로서 사회 갱신보다는 종말신앙에 입각한 개인구원 쪽으로
기울게 되었다.
2) 신유와 은사적 부흥운동(김익두 목사 주도)
3) 신비주의적 부흥운동(이용도 목사 주도)
1930년대 이후로 강압적인 통치에 대하여 현실 도피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신앙체험을 강조하였다.
4)축복성회적 부흥운동(오순절 계통)
1960년대 이후 산업화 정책과 서구의 물질주의적 문명과 가치관이 한국교회에 범람하였다.
★ 한국교회 통속적인 영성 이해
① 기적적 카리스마에 대한 강조
② 개인영혼의 구원 사상
③ 금욕주의적인 세상도피주의
④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분하는 이원론적인 사고
⑤ 비범한 은사에 대한 일방적 추구와 윤리적 삶을 평가절하
⑥ 사회활동 무관심
⑦ 기복적 축복신앙
2. 참된 영성의 출발점으로서 회심과 중생
고전12:13에서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다고
했다. 이것은 신분의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린도 교인들이 모두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았다는
것을 말해줌으로써 그들의 성령 경험의 보편성과 통일성을 강조해 준다. 그 결과 그들이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었다.
만일 성령세례의 경험이 오순절주의자들이 말하는 중생 이후의 제2의 축복이라면 중대한 오류가
따라오게 된다. 예수를 믿지만 제2 축복인 성령세례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한 몸이 아니라는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다.
바울에게 있어서 신자의 영성은 성령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됨으로써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것에서 시작된다.
바울의 성령론의 기본적인 특징은 구원론적이라는 사실이다.
누가가 말하는 오순절 성령은 카리스마적인 예언의 영의 선물이라는 것이다.
모든 이에게 나눠주는 보편적인 선물이다.
누가는 또한 예언의 영의 선물을 신자들의 회개경험에 직접적으로 연결시킨다(행2:38).
3. 삼위일체 신론에 기초한 영성 - 균형상실의 위험성에 처해 있기에
성령은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구원 사역에 근거해서 활동하시며 그것을 개인에게
적용하고 완성하신다.
4. 참된 영성은 윤리적인가, 카리스마적인가?
바울은 영적인 은사들을 사람의 은사에 종속시킴으로써 그것들을 그의 윤리적 전망에다 통합시킨다.
자신을 영적으로 여겼던 고린도 교인들을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어린 아이들 또는 육신에 속한
그리스도인으로 평가하였다(고전3:1-4).
참된 영성은 윤리적 삶으로 표현되고 논증되어야 한다.
신령한 사람은 성령의 가르침을 받는 사람이며(고전2:13), 모든 것을 판단할 영적 분별력을 소유한
사람이며(고전2:15), 그리스도의 마음을 소유한 사람이다(고전2:16).
따라서 다양한 은사들을 경험했다고 해도 윤리적 삶을 소유하지 못한다면 신령하고 영적인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윤리와 은사가 다 같은 성령의 사역이다.
은사는 '은총의 불가피한 작용 또는 현현으로서 구원받은 개별 신자들에게 하나님께서 그 뜻대로
(고전12:11,18) 주권적으로 나누어주시는 선물'이지만, 윤리는 육신과의 싸움에서 날마다 성령에
순종하는 전투적인 삶 속에서 주어지는 선물이다.
케제만은 윤리는 신자들에게 '선물과 과제'로 주어졌다고 했다.
5. 참된 영성, 성령의 능력, 하나님 나라
영성의 범위를 논하기 위해서는 하나님 나라의 개념을 어떻게 이해하는가에 달려 있다.
성경이 말하고 있는 영성은 세상 속에 임한 하나님 나라의 실제와 관련하여 이중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어두움의 영에 의해 지배받는 세상이지만, 또한 하나님께서 여전히 관심과 사랑을 가지고
통치하고 있는 그에 의해 창조된 영역으로 간주된다.
예수의 세상사역의 목적은 그의 백성을 악한 세상에서 데려가기 위함이 아니고, 오히려 세상에 보내기
위함이었다. 그리스도인의 딜레마는 세상에 보냄을 받았지만 세상에 속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요17:16).
세상 속에 있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이 바로 기독교 복음의 초월성이며 참된 영성의 구조이다.
하나님의 왕적 주권과 주인되심은 단지 개인적이고 영적인 일에만 제한 되어서는 안되고, 사회와 문화와
역사의 모든 영역들 속에서 실현되어야 한다. 긴장관계 속에 있다는 것이다.
다만 긴장을 긴장으로 느끼지 않고, 세상 속에서 사람들을 변화시키며 능동적으로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성령의 능력에 충만해지는 길 밖에 없다.
예수의 근본적인 정신이 하나님 나라의 사상에 있었다면, 하나님의 왕적인 주권과 주인되심은 단지
개인적이고 영적인 일에만 제한되어서는 안되고, 사회와 문화와 역사의 모든 영역들 속에서
실현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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