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성령

21세기 영성

오은환 2020. 2. 17. 14:37

이 짧은 논문은 총신대학원 재학 중에 쓴 것입니다.

벌써 25년이라 세월이 흘렀습니다.  

1. 영성의 정의
기독교 영성(spirituality)은 새로운 용어가 아니다.

사전적 의미는 '종교적인 가치에 붙잡혀서 사는 영적인 삶의 상태'를 가리킨다.

반면에 경건(piety)은 '종교적인 의무에 충실함"을 의미한다.

순수한 의미의 영성과 경건은 같은 종교 생활의 내용을 표시한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장신대 오성춘 교수는 "영성이란 자기가 보기에 가장 이상적인 정신을 자기의 정신으로 받아들여

그 정신을 실현하기 위하여 자기의 생명을 거는 것을 의미한다"고 영성을 정의했다.

일반영성은 엄격한 자기훈련과 수양을 통하여 자신의 성품을 바꾸려는 인간적인 노력을 강조하는데 반하여

기독교 영성은 성령안에서 우리에게 임재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의 인격적인 교제의 삶을 살아가는

동안에 그분께서 우리 안에 의의 열매, 빛의 열매,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해 주신다는 점에 초점을 맞춘다.

 

이러므로 일반영성의 주체는 개인인데 반하여 기독교의 주체는 인간이 아닌 하나님이시다.

노만 샤우척(Norman Schawchuck)은 기독교 영성의 핵심은 "신자들이 새로운 성품을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신자들과 주 예수 그리스도와의 인격적인 교제를 개발하는 것이고, 주님과의 인격적 교제는 삶의 변화를

가져오고,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다"라고 한다.

 

영성에 관해서는 개신교나 가톨릭이 어느 정도 일치성을 보이고 있다.

가톨릭의 영성은 '성례전적 영성'으로 표현할 수 있고, 따라서 미사는 중요한 영성생활의 방편이 되었다.

영성의 궁극적 목표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이었다.

 

칼빈은 이성주의자로서 금욕주의를 싫어했다.

믿음에 의한 의인의 일회성을 강조했으나 그리스도 안에서 신앙적 성장을 강조했다.

이것은 청교도들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특별히 칼빈은 연합이 바로 구속의 핵심이기에 교제보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에 강조를 두었고, 후대의

청교도들은 신자들의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격려하고 확신시켜 주는 교제 쪽에 강조를 두었다"

2. 역사적 접근(예수시대부터 1차대전 이전까지)
A. 초대교회

예수 그리스도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던 사도들과 부활과 승천을 직접 목격했던 증인들의 영성은 현재까지도

하나의 모델로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종종 편견적인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초대교회에 직접 영향을 주었던 예수님의 영성은 어디서 나왔으며, 그 영성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에

대한 답이 있어야 한다. 이것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가장 모범적인 모델이 된다.

 

예수님의 성령충만은 요단강 세례시로부터 받았다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되지만, 그 의미는 하나님의 아들의 표와

공생애의 시작의 표로 보아야 하고, 예수님이나 세례요한은 태중에서부터 성령충만을 받았다고 보아야 한다.

결과적으로 예수님의 영성은 성령에 충만으로부터 왔으며, 영성의 범위는 기도와 치유, 말씀사역으로 확대되었다.

 

하나님의 참뜻을 저버린 율법주의자들에 대하여는 철저하게 질타하는 모습을 알 수 있다.

안식일에 치료사역을 감행함으로서 잘못된 제도에 책망을 했다.

예수님의 영성은 개인만을 위한 한정된 영성이 아니었고, 사회적인 제도까지 확대됨을 보여준다.

 

예수님과 삭개오와의 만남을 통하여 보면 더 구체적으로 인식할 수 있다.

예수님을 만남으로 내면적인 변화가 찾아왔다. 그가 죄인이라는 것을 인식하였고,

더 나아가서 타인의 것을 부당하게 취한 것은 4배나 지불하기로 했다.

그는 더이상 세리로서 사회적 악의구조인 탈세제도를 행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함으로 구조악에 대해

더 이상 따르지 않을 것을 암시한다.

 

삭개오가 단순히 예수님을 만난 것뿐만 아니라, 만남 후의 삭개오의 세리로서의 삶을 고려해보아야 한다.

인간의 삶의 전 차원에 분명한 변화를 주지 못하는 영성훈련은 재고해야 한다.

삭개오의 개인적인 힘이나 결단으로 성립된 영성이 아니었다.

 

성령이 행하시는 영성은 "초대교회 시기에 살았던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을 철저하게 성령께 사로잡힌

자들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참된 영성이란 곧 성령충만한 상태를 의미한다".

잘못된 악령과의 만남으로 "몬타누스와 두 여인 프리스길라와 막시밀라는 이성을 벗어나 광적인 황홀경에 빠져

신기한 방법으로 이야기했다. 추종자들 또한 마치 성령의 은사로 기쁨이 충만한 듯이 행동하였다"

B. 중세시대
A.D 313년 기독교는 콘스탄틴 대제의 '밀란칙령'에 의해 타 종교와 동등하게 취급받았고, 황제의 제국의 통일과

안정의 정책에 의해 박해를 받던 과거에서 지배하는 위치로 급부상하였다.

그후 계속적인 우대 속에 기독교는 생명력이 약해져서 정치와의 결탁으로 참된 종교로서의 역할을 상실하여 갔다.

"이후 신앙생활은 형식적이고 생동감이 없게 되자, 신앙생활을 깊이 있게 하고 삶의 훈련을 하며 하나님과 깊은

영적인 교제를 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기존의 교회를 떠나서 수도원 생활을 시작했다".

 

수도원은 교회가 타락했을 때 정화역할을 감당했다.

중세 수도원 생활은 거의 변화가 없이 이루어졌다.

"성녀 클라라는 산 다미아노 수도원에서 기도, 고행, 노동, 침묵, 순결을 지키기 위해 엄격한 생활을 하였다.

클라라는 입고있는 고행복 허리를 13개 매듭을 맨 새끼줄을 띠로 매고 있었다.

그녀에게 육체는 죄갚음을 하기 위한 수단, 영을 정화하는 도구에 불과했다.

그녀는 자기 육체를 학대하는 일로 전 인류의 고통에 참여하기로 한 것이다.

고난의 생애요 끊임없는 봉헌이었다".

 

중세시대는 이원론적 사고의 영향이 수도원에 미쳐서 영과육을 분리하는 영성이 일어났다.

개인의 통제를 통한 영성이 교회와 사회에까지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쳤지만, 태동부터 한계를 지녔기에

근본적인 것은 개선하지 못했다.

C. 종교개혁시대
15세기 말까지 교황청의 통치는 교회를 극도로 타락하게 했으며, 15세기가 마무리되면서 교회는 무엇인가

근본적인 개혁을 필요로 하고 있음이 명백해졌다. 종교개혁을 일으켰던 루터의 영성은 그의 성경관에 비추어

볼 때,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구원의 강조에서 신자의 내적성숙에 초점이 맞추어지고 있다.

하루 3시간의 정기적인 기도에서 보듯이 상대적으로 루터는 사회를 향한 영성의 확대까지 나아가지 못했다.

국가를 통한 교회의 정화에 상당한 관심이 있었다.

 

칼빈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라는 모토를 가진 영성으로 삶의 전 영역에로 확대하였다.

중세시대를 말씀에 대한 기근으로 보았기에 종교개혁시대에는 말씀에 입각한 삶을 강조하였다.

따라서 신비주의적 영성은 밀려났고, 개인구원과 말씀의 사회적 적용을 강조했으며, 이것은 후대의 칼빈에 의해

영향을 받은 존 낙스를 비롯한 청교도들에게 크게 영향을 미쳤다.

D. 경건주의
현대의 신학자인 에른스튼 케제만은 "교회의 생명은 아직도 경건주의 안에 뿌리를 두고 거기서 영향을 얻고 있다.

그러므로 경건주의의 쇠퇴는 전체교회의 활동영역에 대한 심각한 위기라고 볼 수 있다."고 경건주의의 영성이 미친

영향이 크다는 것을 강조했다.

 

17세기 초부터 시작된 경건주의는 20세기 초까지의 기독교 선교운동에까지 영향을 미치기에 중요하게 다루어야

한다. 경건주의자들의 교회와 세상에 대해 기독교 윤리에 근거한 기독교적 특징을 지닌 삶의 양식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자기부정의 의미와 형태가 분리된 기독교는 공허한 신학중심주의나 겉치레의 형식주의가 되고 만다는 것이

그들의 확신이었다.

17세기 정통주의가 고백하는 신앙이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이 아니라, 신학적 신조에 대한 죽은 신앙이라고

느꼈기 때문에 고백하는 그리스도인뿐만 아니라, 행동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원했던 것이다.

 

경건주의의 4대특징은 체험적, 이상주의, 성서강조, 저항적 요소이다.

헨리스미스(Henry Smith)는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한다면 과연 그리스도인이 무엇인지 살펴봅시다.

아들 같으나 서자이고, 달콤한 것 같으나 맛이 고약하고, 뜨거운 것 같으나 미지근합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자를 토해내십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인것 같으나 사실은 아닌것이다."고했다.

 

경건주의자들은 그들의 설교에서 끊임없이 회개와, 성화없는 개인의 기독교는 공허한 것이고, 그의 신앙적

고백은 사기일뿐이라고 강조했다. 네델란드의 초기 경건주의 개혁교회의 아버지로 불리는 윌리엄 데링크는

영국과 스코틀랜드에 머무르면서 청교도 영성의 영향을 받았다. 직업의 의무를 묵묵히 수행하고, 가난한 자를 위한

자선행위, 병자방문, 무지한자 교육, 상한 자 위로등 많은 감명을 받았다.

그에게 영성이란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의 공로에 대해 신뢰하는 것 이상으로 인격적인 삶을 새롭게 하고, 살아있는

그리스도에 대한 헌신이었다. 신앙은 수동적인 것보다는 능동적인 것이며, 신앙의 능동적인 측면은 사랑 안에서

표현된다".

 

독일에 있어서 루터가 이해한 말씀의 교리를 윤리적으로 변형시킴으로서 칭의의 체험을 성화의 체험으로 바꾼

진정한 경건주의의 아버지인 필립 야곱 슈페너는 루터교의 약점을 발견하고 6가지 고칠 것을 주장한다.

슈페너의 영향을 받은 진첸도르프는 "경건에 큰 비중을 두고 그가 세상을 떠나기까지 226명의 선교사를

전 세계에 파송했고, 그와 헤론후트 교인들의 경건성이 18세기 교회와 사회에 큰 영향력을 미쳤다.

 

" 경건주의의 장점에도 불구하고 영성을 추구하는 자가 범하기 쉬운 문제점이 발생했다.

신학적 정의나 예배의식 형태의 정확성을 기피했고, 개혁적 성향인 비판정신이 강하여 미처 수용할 수 없었던

부분도 많았다. 더 나아가서 느낌과 감정을 중요시한 신비주의로 흘러가기도 했다.

삶이 협소하고, 세상을 부정하는 금욕주의로 흐르는 경향이 일어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7,18세기의 경건주의의 영성운동은 영국, 미국 계통의 개신교에 큰 활력을 불어넣었다.

새로운 성서연구를 자극했고, 설교에 중점을 두게 했으며, 만인제사장설을 실천했고, 선교활동의 발판을 제공했다.

더 나아가서 노예타파, 고아와 과부를 위한 실천적 사회문제를 부각시켜 사회전반에 영향을 주었다.

3. 현대영성의 경향
1,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인류는 이성으로서의 이상국가를 이룬다는 것이 불가하다는 것을 인식하였고,

실존주의의 등장의 여파로 인간 개개인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었다.

인간은 믿을 수 없기에 개인적인 성향과 선입관으로부터 오는 영향을 배제하고 객관적인 관찰과 습득에 근저해서

얻어지는 현대과학의 지식은 현대영성에 있어서 막대한 영향을 주었다.

 

"현대과학의 태동과 세속화에 의한 초월성의 상실은 하나님의 실재를 아는 방법으로서의 내적 경험을 상실하였다.

더 나아가서 심리학, 신학, 사회학, 종교역사학, 철학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오늘날 영성은 이러한 학문의 영향으로인해 기독교의 역사적 전통 안에서 영성의 본질보다는 정신요법이나

사회학, 정치학, 상담학, 인류학에서 영성의 방향을 발견하려고 하고 있다."

4. 한국교회의 영성
한국교회역사를 볼 때, 미국의 대각성운동의 결과로 선교사들이 들어왔기에, 종교개혁과 경건주의 그리고

청교도들의 영성에 의한 직접적이 영향아래 있다. 이러한 영성과 초기 복음이 들어오던 시기의 한국의 정치적

절망감, 그리고 전통적인 샤머니즘의 향아래 복음의 전래는 사회개혁쪽으로 급격하게 기울기 시작했다.

 

미신타파와 문맹퇴치, 여성의 신분상승, 양반제도 폐지를 통한 자유획득 그리고 애국하는 길로서 독립운동 등

활발한 사회활동을 이루어 나갔다. "기독교가 한국에 유입되어 정착되는 과정에서 내.외적인 갈등도 겪지만,

민중의 지지를 얻은 종교로 정착되고 민족의 근대화 내지는 민족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교회의 모습을

구현시켜 나갔다."

 

그러나 일본의 합방이 가시화되면서 정치와 종교의 충돌이 피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자 선교사들은 기독교의

정교분리 원칙을 지지하여, 점차로 교회내의 영성훈련에 강조점을 두기 시작했다. 영성의 범위가 사회에서

개인으로 전환을 이루었다. 1907년 대부흥운동이후 급속하게 개인영성으로 기울어졌다.

길선주 목사의 새벽기도회로부터, 1920년대 이용도 목사의 등장과 더불어 신비주의적인 영성운동이 활발했다.

 

1950년 한국전쟁을 겪고 난 후 1970년대에 성령운동이 일어났다.

1970년대 후반기에는 각종 선교단체들의 성경연구 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났다.

한국교회사를 돌아볼 때, 한국교회 영성은 극단적으로 치우치는 경향이 많았다.

세계교회협의회(WCC)의 개인구원을 도외시한 지나친 사회적 참여와, 세계복음주의 협의회(WEF)의 사회참여를

등한시한 개인구원 치중은 한국신학에도 그대로 나타났다.

"오순절 교회의 성장은 샤머니즘적 영향을 받은 한국교회에 열광주의 및 기복사상, 타계주의를 불러일으켰다."

참 고 문 헌
- 단행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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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 문 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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