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성령

서철원 교수의 성령 이해 - 성령신학

오은환 2019. 9. 12. 07:15

우리는 종교 개혁자들을 통해서 많은 면에서 혜택을 누리고 있습니다.

거대한 가톨릭과 맞서 싸운 루터의 용기가 너무 크게 느껴집니다.

칼빈의 사려깊은 생각들은 우리의 지평을 넓혔습니다.

그 이후 끊이지 않고 신학의 틀을 발전시켜 온 분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하지만 어느 한 순간 온전한 해석이 완성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오늘날까지 발전되는 것을 볼 때 아직도 해야 할 일들이 남아 있음을 알게 됩니다.

특별히 구약을 이해함에 있어서 온전함으로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신약 또한 해석상의 많은 오류들을 내포합니다.

 

성령신학

 

 

서철원 교수의 <성령 신학>을 통해 개혁주의 신학도 중요한 부분에서 결함이 있음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분이 가진 성경 이해의 틀은 곧 개혁신학의 현주소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령론에 관하여 기록한 <성령신학>의 책 속에서 오해되는 것들을 몇 가지 정리해 보았습니다.

 

①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 이전에는 성령 강림이 없었고, 불가능하였다(p.69)

<반론>

누가복음은 성령충만한 사람들에 대해 언급합니다.

세례요한을 잉태한 엘리사벳, 그의 아버지 사가랴, 마리아, 시므온, 안나 선지자, 세례 요한, 예수님 등이

성령에 충만하다고 증거 합니다.

 

② 예수께서 세상에 있을 동안에는 성령을 받을 수 없다(p.69)

<반론>

베드로가 신앙고백을 하였을 때 이것을 그에게 알려주신 분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라고 말합니다.

즉 이 말씀은 하나님이 보내신 성령으로 알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또한 보혜사에 대해 알려주면서 그분은 현재(구약부터 공생에까지) 이스라엘 중에 거하며,

앞으로 오순절 날 내 이름으로 올 것을 가르쳐주었습니다.

 

 * ... 그러나 너희는 그(예수님이 보낼 보혜사 = 진리의 영)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요14:17)

 

③ 구약 백성들 가운데 성령의 임재 즉 거주는 가졌지만, 각자가 성령의 내주는 갖지 못했다(p.69)

<반론>

바울은 고린도 후서 6:16절에, 야고보는 야고보서 4:5절에 구약 백성들이야말로 성령이 거하는 성전이라

말했습니다. 이 유명한 구절들이 모두 구약 백성에게 해당되었던 것이며, 그 특권이 예수 안에서 모든

이방인들에게 전가됨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 ...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고후6:16)

   - 시내산 언약 때 말씀하신 구절 인용(출29:45-46)

   - 이사야에서 인용(사52:11)

 

 * 너희는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냐(약4:5)

   -  십계명에서 인용(출20:5, 신5:9)

 

④ 회막 안에 하나님이 거하심은 백성 가운데 하나님께서 거주하심을 말하며,  이 하나님의 거주는

   성령의 임재이다(p.69) 

<반론>

하나님은 사람이 만든 전에 거하지 않습니다.

스데반 집사(행7:47-50), 솔로몬, 바울 사도(행17:24)가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⑤ 하나님의 백성 되는 길이 신약교회는 믿음으로, 구약교회는 할례 받음으로 된다(p.67)

<반론>

신구약 성도들의 구원형태가 서로 다르다는 주장은 심각한 문제를 일으킵니다.

구약 백성들 가운데 성령의 내주를 인정하지 않음으로 할례의식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은

서로 다른 형태의 구원이 가능함을 묘사하는 것으로 논란의 진원지가 됩니다.

 

바울은 할례라는 것을 그 사람이 가진 <믿음을 외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묘사합니다.

* 그가 할례의 표를 가진 것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롬4:11)

 

할례라는 것은 그가 가진 믿음을 외적으로 드러낸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약이나 구약 백성들은 <모두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만일 구약백성들에게 성령이 없었다면 구원에 대한 보증이 어디 있었을까요?

더 나아가 그들이 부활할 것이라는 보증 또한 성령이 없이 무엇으로 가능했을까요?

 

마르다와 같은 평범한 여인도 마지막 날에는 부활할 것을 고백했는데(요11:24),

그 고백의 근원은 성령입니까, 아니면 자신의 확신입니까?

 

가톨릭 신자들이 전통이라는 이름 아래 말씀을 분별없이 믿어왔던 것이 안타까운 사실인데,

우리 개신교 역시 <온전한 말씀을 부족한 상태로 믿는 것> 역시 저들과 다를 바 없습니다. 

특별히 구원에 대하여 성령의 보증으로서 임재가 반드시 필요한데도 구약백성들 가운데 성령을 배제하고

구원론을 다루었으니 너무 허무하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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