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신학지남

칼 바르트 신학 요약

오은환 2020. 12. 25. 20:05

이 글은 총신대학원에서 조직신학을 가르쳤던 서철원 교수의 논문입니다.

신학지남 1999년 봄호에 실린 <발트 신학의 문제점들>을 요약한 것입니다.

칼 바르트에 대한 평가는 신학교에 따라 조금씩 달라집니다.

크게 바르트를 자유주의자로 보는 보수 신학교와 반대로 자유주의자가 아니라고 보는

장신대학원과 같은 신학교도 존재합니다.

 

- 박영철 목사의 블러그에서 캡쳐 -

 

1. 성경관

보수신학을 가진 자들은 바르트가 설정한 전제들을 이해하는데 애를 먹습니다.

그만큼 난해하기 때문입니다.

바르트는 성경을 어떤 책으로 볼까요?

 

"발트에 의하면 성경은 그 자체로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고, 하나님의 계시가 아니다.

성경은 일어난 계시의 기록이다. 또 성경은 교회가 일어난 계시를

회상하는 회상물이다...성경은 일어난 계시가 아니라 교회가 그 계시를 회상하는

구체적인 수단이다.

 

...성경은 그 자체로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므로 하나님의 말씀 혹은 일어난 계시의 증인이다.

즉 성경은 일어난 계시가 아니므로 하나님의 계시를 증거하는 증인이다...그런데 성경을 계시와

일치시키는 것은 성경에 나쁘고, 합당하지 않은 명예를 입히는 것이 된다"(P.161)

 

바르트의 성경관이 얼마나 특이한지 어디까지 말하려는 것인지 감을 잡기 어렵습니다.

이렇게 난해하게 말하는 까닭은 계속해서 살펴보면 알게 됩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그 본문에 있어서 근동의 한 종족의 종교의 역사의 문서이고,

그 종족의 헬레니즘적인 외도자의 종교의 문서일 뿐이기 때문이다. 성경 본문에는

많은 양의 비정경적인 전통이 들어있고, 이런 것들이 또 교리로 확정되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는 역사적으로도 확인하기가 어려우며, 확인을 해도 다른 종교설립자보다

더한 정도이고, 또 나사렛의 랍비이다. 또 성경의 기적들도 해석될 때는 하나님의 말씀의 증명으로보다는

달리 해석되는 경우가 많고 세상성으로 해석되고 그것을 벗어나기 어렵다.

이렇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 자체로 하나님의 말씀 아닌 형상들로 갖고 있다"(P.161)

 

분명한 것은 바르트가 생각하는 성경은 하나님의 직접적인 말씀이 아닌 교회가 그것을 계시로 인정해서

기록한 것으로 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그것의 그림자 곧 형상들로 봅니다.

비슷하지만 실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 애매한 말을 합니다.

 

"그대로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 되는 사건을 통해, 하나님의 계시가 된다는 것이다"(P.161)

 

바르트 성경관을 살펴보면 더 이상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책이라든지, 또 오류가 없는 책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또 바르트는 에비온파처럼 예수님을 유대인의 랍비 정도로 보았기에 복음서 역시

훌륭한 책은 될망정, 무오한 책으로 논하기는 어렵습니다.  

 

2. 삼위일체

바르트의 신관은 유대교와 같습니다.

삼위일체 교리는 인간이 만든 우상형상을 경배하는 것으로 봅니다.

 

"전통적인 삼위일체 교리를 전적으로 부정한다.

...하나님은 한 위격적 한 하나님으로 유대교와 같은 신관을 전개하였다"(P.162)

 

바르트는 삼위일체를 부정하면서도 그 용어를 사용합니다.

그래서 설명하는 부분도 어색합니다.

 

"그러면 발트가 말하는 삼위일체는 무엇인가? 삼위일체 교리는 계시에 뿌리를 가지므로

계시에 의해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그것은 계시의 과정일 뿐이다.

계시에 있어서 계시자가 있고, 계시작용이 있으며, 계시된 내용이 있다.

계시자는 아버지에, 계시 작용은 아들에, 계시 내용은 성령에 상응한다"(P.162)

 

3. 예수 그리스도

바르트의 삼위일체를 이해하면 당연히 성자에 대한 관점이 정통주의와 전혀 다름을

알게 됩니다. 예수님은 삼위의 제 2 격이 되지 못하고, 그저 평범한 한 인간 즉 피조물입니다.

바르트에게 예수이 성육신했다는 개념이 없습니다. 

 

"발트의 삼위일체론에 의하면 성육신 할 하나님의 위격적 존재가 없다. 예수 그리스도는

시간 내에서 나서 살다가 죽으므로 끝이다. 그는 창조 세계에 속한다. 즉 피조물이란 말이다.

그러면 왜 그를 하나님으로 부르는가?

 

그가 구원 곧 화해를 이룬 자이기 때문이다. 그는 순전히 역사적인 인물로서 구원을 이루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성육신이 아니고, 삼위일체의 제2 위격으로 일치시킬 수 없으면,

예수가 왜 그리스도인가? 발트에 의하면 창조의 원형과 근거로 하나님의 경륜 속에 존재하였기

때문이다"(P.163)

 

바르트에 따르면 예수는 한 평범한 사람이었지만,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그를 통하여 인류를 구속하는

역할을 감당하도록 계획하고 실행하였기에 하나님이 그를 높여 하나님으로 올려주었다는 견해입니다.

바르트는 전통적인 삼위일체론에 대해, 특별히 성자에 대한 관점을 공격합니다.

 

"제2 위격은 숨겨진 하나님이고, 사람이 만들어낸 신들의 형상이다"(P.164)

 

바르트는 예수께서 처음부터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고, 영원 전에 하나님의 계획 속에는 선재한다고

주장합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은 영원하신 하나님이 아니라 그저 하나님의 계획 속에 들어있는

존재로 인식합니다. 

 

서철원 교수는 이런 바르트를 아리우스주의자라고 비판합니다.

예수께서 어느 시점에서 시간 안에 존재하게 되었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바르트를 정통신학의 범주 안에 넣을 수 있을까요?

철학을 바탕으로 신학을 추구했던 인물로 보입니다. 

 

4. 구원론

바르트가 이해한 예수님이 누구인지에 대한 이해를 통해 구원론을 접해야 합니다.

성자를 제2 위격이라고 인정하지 않기에 구원을 위한 성육신 역시 거부합니다.

평범한 인간 예수가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자로 인정받았기에 그를 통하여 구원에 참여하며,

그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발생한 구원으로 설정합니다.

 

바르트의 구원론의 특징 중의 하나는 인간이 신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존재에 동참한다는 표현입니다.

 

"발트에 의하면 구원은 죄와 사망에서의 구출이고, 영생을 선사받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신이 되는 것이다...교제의 당사자인 사람을 끌어 올려 자기의 존재에

동참하는 것이 구원이다...이 하나님의 존재에 동참이 바로 구원 혹은 화해인데,

이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발생하였다"(p.165)

 

바르트의 이런 구원론은 그의 내면적 사상이 밖으로 표출된 것입니다.

예수는 단지 평범한 인간이었지만 하나님이 그를 높여 하나님의 아들 곧 신이 되게 하셨기에,

다른 인간들 역시 예수처럼 높여져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논리입니다.  

 

5. 만인구원

바르트 신학은 처음부터 잘못된 전제로 출발하기에 모든 것이 정통신학에서 벗어났습니다.

특별히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고 단순한 인간으로만 보기에 구원론은 많이 빗나갔습니다.

결국 바르트를 통해 만인구원론이 등장합니다.

종교다원주의의 문을 열어 놓은 것입니다.

 

"발트에 의하면 하나님이 인류를 하나님의 존재에 동참하도록 하는 것은 일부 선택된 자들에게만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류에게 허락하신 것이다...교회는 이 사실을 증거(선포)한다.

예수는 유기된 자이다. 유기된 자이면서 또 선택된 자이다...

각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그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하였음을 증거하고, 그 선택을 거부하는 것이

잘못되었음을 증거한다"(p.166-167)

 

바르트의 선택과 유기를 통한 구원론을 보면 무엇을 전해야 하는지 난감합니다.

복음전도자는 그저 하나님의 선택을 선포하기만 하면 됩니다.

비록 그들이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하나님이 구원하시기 때문에 절실하게 전할 필요도 없고,

또 복음을 위해서 순교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됩니다.

 

6. 창조론

바르트가 생각하는 창조론을 보면 그가 신학자인지 혹은 철학자인지 혼란을 야기합니다.

창조를 역사적인 사실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발트의 신학에 의하면 창조역사는 사실적 역사가 전혀 아니다. 그것은 주석적으로

또 교리적 근거들에서 그렇게 확정해야 할 것이라는데 단호하다"(p.169)

 

그러므로 바르트가 설정한 창세기는 허구의 사건들뿐입니다.

교회가 만들어낸 상상의 산물일뿐입니다.

 

"낙원은 열심히 일할 자리임을 지시한다. 따라서 지구상에서 한 점을 지적하고 이곳이 바로

낙원이라고 말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따라서 에덴동산은 이스라엘이 출애굽 이후 광야에서

가졌던 모든 경험을 역투사한 것일 뿐이다. 즉 낙원에 물이 흘러넘치고, 풍성한 과일이 맺히는 기술은

단지 이스라엘이 광야생활에서 경험한 절박한 물의 요청, 채소와 과일을 먹지 못해서 그렇게도 먹기

바란 것이 에덴의 역사에로 역투사된 것이지 사실의 기록이 아니다...발트 신학에는 역사적 창조가

전혀 없다"(p.170)

 

서철원 교수가 평가한 바르트는 신정통주의가 아니라 자유주의자입니다.

또한 바르트를 오리겐과 자주 비교합니다.

너무도 비슷하단 의미입니다.

 

"발트의 이 만인 구원설은 오리게네스의 만유회복론과 같다. 오리게네스에 의하면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로 만유를 회복하므로 모든 인류가 다 구원될 뿐 아니라, 마침내 사탄까지도

회복되어 원래 자리로 돌아간다고 주장하였다"(p.1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