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례와 성령'이란 주제는 언뜻 보면 어울리지 않는 관계처럼 보입니다.
둘이 매우 밀접한 관계라고 한다면 이상한 눈으로 볼지도 모릅니다.
할례라는 단어는 마음의 할례와 육체적 할례 모두를 연상해야 합니다.
할례받지 않은 상태는 마음의 할례를 받지 못한 것을 묘사합니다.
즉 성령의 내주와 역사함이 없는 상태입니다(레26:41).
이사야 선지자는 할례 받은 유대인과 할례 없는 이방인들의 정체성을 잘 묘사했습니다.
거룩함과 부정함으로 비교합니다.
* 시온이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네 힘을 낼지어다.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여,
네 아름다운 옷을 입을지어다. 이제부터 할례 받지 아니한 자와 부정한 자가
다시는 네게로 들어옴이 없을 것임이라(사52:1)
유대인들은 할례의 의미가 무엇인지 잘 알았습니다.
아브라함과 맺었던 할례가 이천년동안 시행된 후이지만 복음서의 청중들과 예수님은
할례에 대한 의미에서 원활한 소통을 했습니다.
*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마13:9)
유대인들은 이 짧은 말씀이 곧 성령의 음성을 들고 깨달으라는 의미로 이해했습니다(렘6:10).
그래서 어떤 청중들도 이 말의 뜻을 다시 묻지 않습니다.
반면에 이방인들에게는 친절하게 설명합니다.
*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계2:7,11,17,29, 3:6,13,22)
할례와 성령의 관계를 제대로 정립하는 것은 매우 귀한 가치가 있습니다.
할례의 진정한 의미를 몰랐던 자들로 인한 폐혜로 서신서에서 부정적인 묘사가 많습니다.
그들은 할례와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에 이른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자들로
할례와 율법 속에서 그리스도를 보지 못한 자들입니다.
구약이나 복음서에서 할례는 어떤 부정적인 느낌도 없습니다.
다만 할례는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배로운 피 흘림을 통해 그 역할이 끝났습니다.
그 때까지만 존재하는 옛 성례이기 때문입니다.
옛 성례의 도구들로서 물(세례)과 할례(피)는 그 의미를 제대로 전달하면서도 '날마다' 그리스도 안에
있음을 생각나게 합니다. 세수를 하고 손발을 씻을 때마다 죄 사함을 기억하게 하고,
화장실을 갈 때마다 피흘림을 보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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