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성령

할례와 중생(거듭남)

오은환 2021. 3. 23. 17:10

유대인의 제일 됨이 무엇일까요?

아브라함의 후손으로서 유대인이 받은 특권은 무엇일까요?

바울은 주저 없이 '할례'라고 언급합니다.

또한 할례와 말씀(율법)이 서로 연관되었음도 밝혀줍니다.

할례와 말씀으로 인하여 범사(많은 것)에 많은 유익(성령이 주는 것들)을 받았습니다. 

 

* 그런즉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냐,

  범사에 많으니 우선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음이니라(롬3:1-2)

 

대부분의 목회자나 신학자 그리고 성도들은 할례가 무엇을 의미하는 의식인지 모릅니다.

할례가 거룩한 예식 곧 성례가 된다는 것을 상상하지도 못합니다.

왜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다는 것이 할례를 통해 증명되는지 그 가치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 출처 : 안티 기독교 카페 -

 

할례는 부모의 믿음이 어떻게 자녀에게 선물로 전가되는지를 보여줍니다.

아이가 아무 선도 행하지 않았지만 부모의 믿음을 통해 의롭다 하십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창15:6)을 받은 이삭을 성령으로 난 자로 표현한 것도 할례와 연관됩니다.

 

*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박해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갈4:29)

 

할례는 거룩한 성례입니다.

할례를 행함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어머니의 태 속에서 의롭게 되었기에

그것을 증거하기 위해 할례를 행하는 것입니다(롬4:11).

 

재세례파는 어린 아이가 신앙을 가질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칼빈은 이런 공격에 성경적으로 대응했습니다.

할례는 중생을 했기에 받은 성례(세례)로 이해했습니다.

 

"유아들은 장래의 회개와 믿음을 위해서 세례를 받으며, 아직은 회개와 믿음이 그들 안에

생기지 않았지만, <성령의 은밀한 역사>에 의해서 그 씨가 그들 안에 숨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부분은 아브라함 카이퍼와 동일하다 - 중생의 씨앗)

 

우리는 할례도 중생을 의미했으므로 중생한 사람이 아니면 할례를 베풀어서는 안 된다고 얼마든지

그들의 추론을 반박할 수 있다"(기독교강요 下, 김종흡, 신복윤, 이종성, 한철하 공저, p.418)

 

현재 할례에 대한 세계적인 신학적 흐름은 세 가지로 보여집니다.

 

* 칼빈 → 아브라함 카이퍼 → 총신(할례를 통해 거듭남이 일어났다, 혹은 중생의 씨앗 심겨짐)

* 헤르만 바빙크 → 고신(할례나 유아세례는 언약백성이 되었다는 표징이지만 중생과 무관함)

* 재세례파 → 할례는 유대인의 표징일 뿐 아무 의미가 없다.

                  (율법과 복음을 무관하게 본다)

 

총신의 김요셉 교수 역시 동일한 주장을 합니다.

<신학지남, 칼빈의 유아세례 변증의 신학적 요점과 종교개혁적 의의, 김요셉>

 

"칼빈은 할례와 세례가 모두 동일하게 육을 죽이는 표징이기에 유아에게도 시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명령했던 할례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죄 사함>을 의미했다.

할례는 육의 죽임과 중생을 의미했다(신10:6)"

 

성경에서 할례가 중생했음을 알려주는 구절들입니다.

① ...그 할례 받지 아니한 그들의 마음이 낮아져서 그들의 죄악의 형벌을 기쁘게 받으면(레26:41)

② 너희가 그 땅에 들어가 각종 과목을 심거든 그 열매는 아직 할례 받지 못한 것으로 여기되,

    곧 삼 년 동안 너희는 그것을 할례 받지 못한 것으로 여겨 먹지 말 것이요(레19:23)

    - 유대인들은 부정한 것을 먹지 않습니다. 반드시 정결한 것만 취합니다.

 

세례가 먼저 성령으로 세례를 받은 후 물세례를 받는 것처럼, 할례 역시 먼저는 마음의 할례 곧

성령의 할례가 있은 후 육적 할례가 표징으로 행해집니다.

▣ 마음의 할례 → 육체의 할례

 

그러므로 유아가 할례를 받은 것은 이미 태속에서부터 의롭게 되었기에 받는 성례입니다.

초대교회 최초의 신학자로 불리는 이레니우스(이단반박 저술)는 할례를 <다시 태어난 사람들> 곧

거듭남의 성례로 보았습니다. 그 결과 <유아들을 거룩하다>고 합니다.

 

어거스틴도 할례를 유아들이 <생명을 얻는다>로 보았고, 어느 누구보다도 유아의 할례와 세례가

<거듭남의 성례>임을 강조했습니다.

'9. 성령'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할례와 믿음 그리고 의  (0) 2021.03.27
할례와 성령  (0) 2021.03.25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성령  (0) 2021.03.21
성경은 실패의 역사인가?  (0) 2021.03.12
구름과 바다에서 받은 세례의 종류  (0) 2021.0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