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중심사상으로 <구속사적 관점>은 매우 유익합니다.
구약과 신약의 중심 사상을 구속사로 보는 것입니다.
값을 지불하고 죄인을 사신 구속의 역사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좋은 구속사를 제대로 이해하고 쉽게 설명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왜 그럴까요?
구속사에 대한 완전한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1. 구속사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위해 아들의 핏값을 지불하였기에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이 구속사가 되어야 합니다.
▣ 죄 사함 → 성령의 내주로 인한 거룩함 → 칭의(실질적으로 의롭게 됨)
1) 죄 사함
구약이나 신약 모두 예수님의 핏값을 지불함으로 죄인에게 죄 사함이 일어났습니다.
구약은 아직 오시지 않았지만 모형을 통해 피값을 지불했기에 죄 사함이 일어났습니다.
구약은 이스라엘과 그 주변의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이런 효력이 발생했지만 그것은 장차 일어날 일의
작은 시작이 됩니다.
2) 거룩함 - 성령의 내주와 조명 그리고 인도하심과 힘주심
구약 성도들이 실질적으로 죄 사함을 받았기에 거룩한 성령께서 성도들에게 내주했습니다.
그 결과 구약 성도들은 성령이 거하는 거룩한 성전이 되었습니다(고후6:16, 약4:5).
그래서 주신 말씀(율법)을 성령의 조명으로 보고, 인도하심을 받았으며, 성령의 힘 주심으로
지킬 수 있었습니다.
3) 칭의
많은 신학자들이 구약에서 칭의 곧 죄인이 의롭게 되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합니다.
실제로 의롭게 되었다는 것에 회의적입니다.
세대주의자들 뿐만 아니라 개혁주의자들도 희미하게만 생각합니다.
"칭의는 단지 법정적 용어일 뿐이야"
만약 여전히 죄인인데 칭의를 미래의 약속으로만 본다면 구약의 죄 사함 자체도 무가치합니다.
또한 성령이 내주함과 인도하심 그리고 조명하심 역시 불가능한 상황이 됩니다.
또한 율법(말씀)을 지켜서 하나님과 이웃을 최고로 사랑한다는 것은 말장난에 불과합니다.
칭의는 구약시대에 실질적으로 일어난 것이며 그러므로 구약 성도들을 '의인'이라 부를 수 있었습니다.
의인이란 호칭은 반드시 죄 사함을 통해 정결케 됨과 성령이 내주하여 거룩하게 됨을 통해서만
받을 수 있습니다.
▣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고전6:11)
2. 구속사 = 그리스도 안에서
구약이나 신약은 구속사를 통해 죄인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좀 더 넓게 보면 구속사는 구원의 전 과정을 포함합니다.
죄 사함이 일회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회개를 통해 반복되어집니다.
이것을 신약적인 개념으로(?) 그리스도 안에 거한다고 표현합니다.
성도의 삶이 그리스도 안에 거함으로 그에 합당한 생활로 나아갑니다.
구약에서 할례와 제사, 신약에서 세례와 성찬은 모두 거룩한 성례로서 구속사가 어떻게 겉으로
드러나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구약 성도들을 그리스도 안에 있었다고 알려줍니다.
비록 모형일지라도 그것이 그리스도를 예표하기에 당당하게 표현한 것입니다.
반대로 이방인들은 '그리스도 밖'에 있었습니다.
* 그 때에(그리스도가 오시기 전 = 구약시대) 너희(이방인)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엡2:12)
3. 구속사 = 그리스도 안에서 = 그리스도와 연합(한 몸)됨
구약 성도들은 단순히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림으로만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일생 전체를 통해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와 연합된 상태로 거했습니다.
바울은 이런 확고함이 있었기에 고린도 교회 교우들이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을 책망합니다.
우상에게 드린 제사와 그 제물을 알고 먹는 것은 곧 우상과 한 몸(연합)을 이룬다고 알려줍니다.
성도들이 결코 해서는 안될 무서운 죄에 참여함입니다.
* 무릇 이방인이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고전10:20)
* 육신을 따라 난 이스라엘을 보라, 제물을 먹는 자들이 제단에 참여하는 자들이 아니냐(고전10:18)
4. 성례를 통해 본 구속사 이해
종교개혁이 하나의 일치를 이루지 못한 결정적인 사건을 성례의 불일치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성례가 그렇게 중요한 것일까 반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례는 단순한 의식이 아니고 우리가 이해한 복음의 핵심을 증거하기에 결코 양보할 수 없는
복음의 본질입니다.
* 천주교 - 화체설
* 루터 - 공제설
* 쯔빙글리 - 기념설(상징설)
* 칼빈 - 임재설
신구약의 모든 성례는 죄 사함과 그 결과 거룩한 성령의 임재한 상태를 드러냅니다.
그것을 외적으로 드러내며 고백하는 것이 성례입니다.
구약의 성례 - 생명나무 열매/할례와 제사/생각함도 성례(바벨론 포로들의 성전 묵상) - 가운데도
이런 원리가 적용됩니다.
왜 칼빈의 임재설이 가장 성경적이며 가장 복음적일까요?
그것은 성례를 통해 복음을 가장 잘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칼빈의 임재설은 성례 가운데 성령의 임재와 역사로 성도들이 그리스도 안에 거함을 완전하게 드러냅니다.
5. 결론
구속사에 대한 정확한 틀이 형성되지 않고는 확신도 없고 제대로 설명할 수도 없습니다.
성경의 중심을 구속사로 설명하기 위해 위의 단계들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어느 것 하나라도 생략된다면 나사빠진 바퀴처럼 삐걱거리며 여전히 혼동 속에 거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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