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심이란 단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위키백과는 회심(悔心)을 회개와 같은 단어로 정의합니다.
더불어 중생이란 의미로도 사용합니다.
"지적 도덕적 중생을 의미한다. 회개는 회심(悔心)이라 불리기도 하고..."
하지만 이런 회심이란 단어는 성경적으로 문제가 됩니다.
바울의 다메섹 도상에서의 회심, 칼빈의 회심, 존 오웬의 회심, 조나단 에드워즈의 회심...
이들이 어떤 특별한 사건을 통해 회심했다고 하는데 우리는 이런 회심을 '거듭난 사건'으로
받아들입니다.
바울의 회심을 기록한 사도행전 9장, 22장, 26장을 읽다보면 바울이 거듭난 것이 아니라
신앙의 전환점을 기록한 것임을 발견합니다.
이전에 그가 섬겼던 하나님이 찾아와서 바른 길을 보여준 것입니다.
바울의 거듭남은 모든 구약성도들처럼 모태에서 이미 일어났습니다.
*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갈1:15)
개혁주의 3대 신학자들 역시 그들의 회심에 대해 논란이 있습니다.
존 칼빈(1509-1564)의 회심을 찾던 연구자들은 시편 주석 서문에서 찾습니다.
아마도 칼빈이 20대에 회심했을 것이라 추측합니다.
존 오웬(1616-1683)은 청교도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뿐만 아니라 할아버지도 목회자였습니다.
백금산 목사는 존 오웬을 26세에 회심했다고 주장합니다.
"오웬은 21살 때부터 26살 때까지 5년 동안 비록 청교도적인 삶과 예배에 헌신하고는 있었지만
1642(26세)년 말 이전에는 분명히 자신이 하나님의 선택을 받고 중생한 사람인지에 대한
확신을 가지지 못했다...(무명의 설교자) 이 설교를 듣는중 오웬은 놀랍게도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백금산 목사 강의안, 존 오웬의 생애와 사상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1)
이런 관점은 문제가 많습니다.
존 오웬이 받았던 유아세례의 의미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않음입니다.
구약의 할례나 신약시대의 유아세례라는 성례가 지닌 중생을 간과한 것입니다.
이런 문제는 역시 목회자 가정에서 태어나서 신앙생활을 했던 조나단 에드워즈(1703-1758)까지 계속됩니다.
"1721(18세)년이라는 해는 조나단 에드워즈가 회심을 이룬 것으로 특징짓는다.
상대적으로 늦은 시기 그리고 복음에 상당히 노출된 다음에 그의 회심이 있었다는 것은
오늘날의 독자들에게 놀라움을 금치 못할게 할 것이다.
...에드워즈의 경우에 그는 예일대학의 대학원 2학년 재학시까지 하나님의 회심의 역사를 경험하지 못했다.
가장 사람의 마음을 끌어들이는 작품 곧 '개인독백'이라고 말하는 작품은 아마도 1734년에 쓰여진 책인데,
그는 거기서 자신의 회심에 관하여 회상하며, 삼위일체 하나님이 영광스러운 복음에 눈을 열게 하시고,
거룩한 것의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 주셨을 때, 그를 압도한 변화를 묘사하고 있다"
(조나단 에드워즈의 생애와 사상, 개혁주의 신학사, 스테펜 J 니콜라스 저, p.35)
복음에 눈을 뜨는 것과 중생은 전혀 다를 수 있습니다.
불신자가 그런 경험을 했다는 것은 중생이라 할 수 있지만, 경건한 부모 밑에서 태어난 아이는
어머니의 태속에서 이미 중생했다는 것이 성경적인 가르침입니다.
중생과 믿음으로 자라남에서 어느 순간에 더 깊은 복음을 깨닫게 되고 특별한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중대한 사건은 중생이 아니라 놀라운 은혜를 체험한 사건으로 보아야 합니다.
어린 아이들이 부르는 찬양과 드리는 예배는 비록 깊지 않는 지식을 가졌을지라도 하나님이 받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거듭나게 하셨고 의롭게 하셨기에 받으시는 예배가 되며 찬양이 됩니다.
그러므로 이런 사건들은 회심(거듭남)이 아니라 복음의 눈이 열리는 전환점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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