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이면서 신학자이며 또 행정가와 정치가 그리고 입법자로서 존 오웬은
다양한 분야에서 깊이 활동한 인물입니다.
종교적인 핍박과 정치적인 소용돌이 속에서 한 순간도 방심할 수 없는 상태로
살아왔으면서도 성도 개인적인 슬픔도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다.
유아의 죽음을 겪은 어느 부인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이 편지를 통해 유아의 죽음을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신학적인 구조와 확신을
찾았으면 합니다.
"하톱(Hartopp) 부인에게
친애하는 부인에게
...부인의 아기는 우리에게 다시 돌아오지 않지만, 우리가 그 아이에게로 갈 것입니다.
그 아이는 단지 부인의 믿음과 인내를 단련하고 영원한 축복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에 영광을
돌리기 위해 태어나서, 바로 죄의 종국을 맞았으니 우리보다 행복한 사람입니다.
...다만, 이러한 슬픔이 정당한 것이 아니요, 죄의 결과이며, 은혜로 치유하도록 우리가 애를 써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하십시오...하나님께서 부인이 이 모든 것에 순종할 때 은혜와 은총을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 마음은 부인과 함께 있으며 부인을 위해 기도할 것입니다.
친애하는 부인, 저는 부인의 가장 사랑하는 친구이지만, 역시 무가치한 목회자입니다.
존 오웬"
(청교도의 황태자 존 오웬, 지평서원, 앤드류 톰슨 저, 엄경희 역, p.199-200)
존 오웬은 아이를 잃은 하톱 부인을 위로하며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어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편지를 써서 위로했습니다.
유아의 죽음은 존 오웬(1616-1683)의 시대에는 매우 흔한 일이었습니다.
오웬 자신도 11명의 자녀를 가졌지만, 열 명은 일찍 죽고, 남은 딸도 젊은 날에 죽었습니다.
존 오웬은 어떻게 이런 슬픔을 당한 자신과 이웃을 위로했을까요?
이 편지를 읽으면서 '유아의 구원에 대한 확신과 소망'이 보이지 않습니다.
유아의 거듭남(중생)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또한 분명한 부활의 소망이 있고,
장차 다시 만날 때의 영광을 이야기 할 수 있는데 이런 부분이 없어서 아쉽단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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