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듭난 자는 절대 구원에서 탈락하지 않는다"
"심지어 자살하더라도 구원은 받는다"
가장 성경적이라는 개혁주의 신학이 가르치는 핵심내용입니다.
그러나 구약을 읽다보면 은혜를 입었던 많은 자들이 구원이 아닌
하나님의 진노를 당하는 사건들이 많이 나옵니다.
우리는 이런 중대한 문제를 어디서 답을 얻어야 할까요?
※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마22:14)
이 구절은 이스라엘 청중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또한 훗날 교회 공동체 안에 있게될 이방인 교우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가능합니다.
우선 당대의 이스라엘 청중들은 대부분이 복음 초청과 어린 양의 혼인잔치에 청함을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은 누구나 은혜로 먼저 복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갈4:8, 히4:2,6).
구약 이스라엘은 단지 복음의 소식을 듣기만 한 것일까요? 아니면 복음에 참여한 자들일까요?
당연히 복음에 참여한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을 향해 성도, 의인, 교회, 거룩한 자라는 호칭들이 따라 온것입니다.
성경을 읽고 정리할 때 가장 기본적이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중생(거듭남)의 유무를 아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을 실컷 설명하더라도 중생의 여부를 모르면 전혀 무익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구약 성도들이 언제, 어떻게 거듭났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태어난지 팔일만에 행하는 할례는 아이가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음을 공적으로 고백하는 성례입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게 된 것을 그 후손들에게도 은혜로 연결시켜주는 것이 할례입니다.
할례는 아브라함 후손들이 어머니의 태 속에서 의롭게 되었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할례를 받은 모든 이스라엘은 모태에서 이미 거듭나서 의롭게 된 자들입니다.
이들은 모두 복음초청(청함)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렇지만 택함(구원)에 이른 자들은 적습니다.
성경은 그들을 <남은 자>로 부릅니다.
성경연구가 지혜롭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아야 합니다.
복음이 신약시대에 시작되었다고 하는 잘못된 전제입니다.
복음은 구약시대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 올바른 견해입니다.
거듭남을 연구하는 자들이 신약에서만 답을 찾으려고 하니 폭이 좁을 수 밖에 없습니다.
수많은 증거들을 놔두고 신약성경만 쳐다보는 것은 지혜롭지 못합니다.
청함을 받은 자들은 이미 거듭난 자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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