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구원론

율법을 바라보는 좋은 관점

오은환 2021. 6. 15. 03:27

오늘날 신학계에서 가장 많이 다루어진 주제가 <복음과 율법>일 것입니다. 

하지만 명확한 답변을 얻지 못해 이제는 다람쥐 쳇바퀴 돌듯 멍하니 쳐다보기만 합니다. 

율법에 대한 바른 접근을 위해서는 몇 가지 전제들을 올바르게 세워야 합니다.  

 

❶ 율법은 구속함을 받은 구약 성도들에게 주어진 것이다.

❷ 구약시대에 율법만 준 것이 아니라 성도들 가운데 성령을 주셔서 내주하여 율법을 조명하고,

    또한 지킬 수 있도록 <사랑>을 부어주셨다(신30:6) - 이런 전제가 없이는 복음과 율법 문제 해결 못함(학2:5)  

❸ 율법이 적용되는 대상을 정확하게 구분해야 한다. 

  ① 구약 성도들에게 주신 율법

  ② 신약시대 이방인들에게 율법의 역할 - 복음을 받기 전/받은 후

 

1. 구약 성도들(이스라엘)에게 율법의 역할은 무엇인가?

두말할 필요 없이 율법은 긍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이미 의롭게 되었고 성령이 내주하기에 그들에게는 정죄함이 없습니다(롬8:1, 엡2:12).

아브라함의 언약(할례)이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다는 '거듭남(중생)'의 순간을 잘 묘사한다면,

모세 언약(율법)은 믿음으로 의롭게 된 성도들이 어떻게 그 의를 유지하면서 성숙해 나가는지

성도의 성화 부분을 다룹니다.

 

둘 다 - 아브라함 언약과 모세 언약 -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시작과 과정을 설명합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 언약이나 모세 언약은 하나님이 죄인에게 베푸신 은혜언약 안에 있습니다.

은혜언약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시작과 과정을 포괄하는 용어입니다.

 

  구약 성도들에게 있어서 율법의 역할
율법의 긍정적
요소들
율법은 선물이다(롬9:4, 3:1-2, 시19:7-11).
율법은 은혜이다(신33:29, 시1:2, 19:7).
율법은 사랑이다(마22:40, 신30:6, 롬5:5).
율법은 영생이다.(눅10:26, 18:20)
율법은 진리이다(시119:142).
율법은 구속함을 받은 후 주어졌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거하게 한다.
율법은 성령의 내주와 조명으로 전달되며,
율법은 성령이 주시는 사랑의 힘으로 지킨다.
율법은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다.
율법의 부정적
요소들
성령의 조명을 <의도적으로> 거부한 자들은
언약을 배교한 것으로 심판에 이른다.

 

2. 이방인 성도들에게 있어서 율법의 역할

바울 서신에 나타난 율법은 대부분이 부정적으로 묘사됩니다.

왜 그럴까요?

이방인 성도들이 복음을 받기 전의 상태를 묘사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방인 성도들의 정체성을 바로 세우기 위해 많은 지면을 할애해서

편지를 쓰고 설명합니다.

복음을 받기 전에 이방인들은 율법에 근거해서 정죄를 받아 사망선고를 받았으며,

결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존재임을 부각시킵니다.

 

오늘날 많은 신학자들과 성경을 읽는 성도들이 헷갈려 하는 부분입니다.

바울서신은 막 신앙생활을 시작한 이방인 성도들에게 쓴 편지인데,

구약 이스라엘도 율법 앞에서 불신자였던 이방인들과 똑같은 상태로 생각한 것입니다. 

 

바울 서신을 읽으면서 반드시 문맥이 무엇을 지시하고 있는지 잘 구분해야 합니다.

복음을 받기 전의 이방인들의 모습인지, 복음을 받고 난 후 성도가 된 상태에서

묘사하는 것인지를 구분하면 율법은 쉽게 이해 됩니다.  

 

  이방인 성도들에게 있어서 율법의 역할
복음을 받기 전의 상태

- 부정적

정죄의 직분(고후3:9)
사망 선고(고후3:7, 롬6:23)
유대인과의 장벽(엡2:14)
원수 된 것(엡2:14,16)
구속과 성령의 내주하심, 조명, 힘주심이 없기에
진노와 무기력한 상태(엡2:11-12)
복음을 받은 후의 상태

- 긍정적
구약 성도들(이스라엘)과 동일한 조건
언약을 떠나면 성령이 조명하는 말씀(율법)을 <의도적으로>
거부하면,
언약에 대한 배교로 심판에 이른다.

 

많은 성도들이 오해하는 문제가 한둘이 아닙니다.

구약은 율법으로, 신약은 복음으로 접근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구약성경은 자유롭게 율법을 말씀과 계명이란 호칭으로 바꿔 사용합니다(시119:47,48,73,103,130,131).

 

예수님이 말씀하신 복음서의 상당 부분은 구약의 율법을 새롭게 조명한 것이 아니라,

원래의 의미대로 가르쳐 준 것입니다. 간음과 살인하지 말라는 말씀은 율법의 원래 의미를

제대로 전해준 것입니다(마5:27-32).

 

그러므로 예수님이 가르쳐 준 계명을 지킨다는 의미가 예수께서 새롭게 세운 말씀이 아니라,

구약의 말씀을 올바르게 가르쳐 준 것이기에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요14:21)

 

*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13:34)

 

바울 서신이 율법을 부정적으로 언급한 것은 복음을 받기 전 곧 거듭나기 전에 이방인들의

죄를 드러내며, 그들에게 사망을 선고하여 죽음에 이르기 하는 역할 때문입니다.

이방인들에게 율법은 이미 구약시대에 거듭나서 의롭게 된 이스라엘과는 전혀 다른 상태에서 주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