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유명가수로 활동하는 소향님이 마라나타(요한계시록, 일곱교회 이야기)를
출간했습니다. 엄청 바쁜 가운데서도 말씀묵상과 연구를 통해 귀한 책을 선물합니다.
추천을 해주신 분들의 큰 칭찬으로 이 책은 시작합니다.
저자의 마라나타 제 1 권은 계시록 1장과 2장을 다루고 있습니다.
1장은 간단하게 다루고 2장에서는 네 교회 -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 를
차분하게 해석합니다.
다른신학자들이 보지 못한 곳을 눈여겨 본 흔적들이 나타납니다.
특별히 계1:1절에 나타난 계시의 수여 순서입니다.
일반적으로 패턴은 이렇습니다.
★ 하나님 → 예수님 → 천사(앙겔로스, 사자) → 요한 → 하나님의 종들
저자 소향은 어떻게 볼까요?
저자는 이 부분을 매우 중요하게 봅니다.
하지만 그의 설명은 난해하며 뚜렷하게 무엇을 말하려는 것인지 파악이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요한이 말하는 천사 곧 사자는 요한에게 계시를 전달하는 천사가 아니라는 뜻이다.
천사이기는 하되 다른 역할의 천사를 의미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요한이 서신을 전달해야 할
대상은 다름 아닌 종들이며, 그 종들이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다른 역할의 '천사'라는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다"(p.48)
이것을 정리하면,
▣ 하나님 → 예수님 → 사자(각 교회의 사자들?) → 요한 → 하나님의 종들
저자는 앙겔로스(사자)가 하나님의 일꾼이라는 것은 아는데, 그 대상이 누구인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합니다. 구약에서 말라크(사자)는 천사, 사람, 예수님, 성령님으로 묘사합니다.
신약에서는 예수님이 빠진 상태로 천사, 사람, 성령님이 사용됩니다.
계1:1절의 사자(앙겔로스)를 '성령'으로 보면 간단하게 마무리 할 것을 너무 어렵게 보고 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해석의 틀은 에베소 교회의 사자(종, 사역자, 목사)를 중심으로
에베소 교회의 편지를 해석합니다. 조금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에베소 사역자 개인 중심으로
해석을 합니다. 즉 사역자 개인에게 보낸 편지로 생각합니다.
에베소 교회 안의 여러 문제들 역시 사역자 개인의 문제로 봅니다.
"에베소 교회의 사자(개인)가 만약 예수님에 대한 첫사랑을 잃지 않았다면, 그 모든 사역의 결과가
예수님의 것인 동시에 영원히 자신의 것이 될 수 있다...교회가 부흥되고 성도 수가 늘어나고
모든 사람에게 좋은 평판을 듣고, 이것을 지키기 위해 종은 매일 고군분투하지만 예수님과의
시간은 어느새 뒷전이다. 그리고 그것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게 된다"(p.111)
저자는 에베소 교회를 책임지고 있는 사자(종, 목회자)가 첫 사랑을 잃었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에베소 교회 안에 첫 사랑을 잃은 자들도 있고, 간직한 자들도 있을 것이란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이런 관점은 서머나 교회에서도 나타납니다.
"...(생명의) 면류관은 사실 서머나 교회 모든 구성원에게 하신 말씀이 아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만 하신 말씀이다"(p.127)
저자는 죽도록 충성하는 자에게 주는 생명의 면류관이 서머나 교회 모든 교우들과 또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성도들에게 동일하게 주어졌다는 것을 부인합니다.
단지 서머나 교회에서 편지를 수신한 사자에게만 해당된다고 봅니다.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는 저자에 의해서 난도질 당합니다.
"빌라델비아 교회 사자의 말씀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가 선천적으로 받은 능력이나 상급의 부분에서
그는 매우 측은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 우선 그는 '적은 능력'을 가진 사람이다.
한 교회의 사자라고는 하나 교회를 운영할 만한 능력이 그다지 출중한 사람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그는 에베소 교회의 사자처럼 강인한 인내력도 뛰어난 분별력도 없는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그가 넘어지지 않았던 사람도 아니었다. 그는 하나님이 다시는 나가지 못하게
하신다고 할 만큼 세상에 있을 때 세상과 교회를 들락거리던 사람이었을 수 있다.
교회를 다니는 사람 중에서도 우리가 생각할 때 믿음도 없어 보이고, 끈기도 없어 보이고, 마음의 상태나
생각이 정말 연약해 보이는 사람, 교회의 골칫거리라고 생각되는 그런 사람이 있다.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는 그와 같은 사람이었을 것이다. 실수도 잦고 넘어지기도 하며,
속기도 하고 때론 방황하기도 했던 그의 적은 능력을 하나님은 알고 계셨다"(p.132-3)
기존의 해석과는 너무도 상이한 해석을 합니다.
이런 해석이 나오게 된 것은 계시록을 해석하는 틀(프레임)에서 결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일곱 교회에 보낸 편지가 각 교회의 사자 개인에게 보낸 것으로 보았기에 형성된 틀입니다.
이런 결함뿐만 아니라 중요한 곳에서 역사적 본질을 놓쳤던 이유도 있습니다.
니골라 당의 정체에 대한 저자의 견해입니다.
"니골라라는 이름은 일곱교회를 향한 서신에서 두 번 등장한다.
첫째가 에베소, 두 번째가 버가모 교회다.
이런 이름을 가진 사람이 실제 있었는지 아닌지(없었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p.114)
저자는 '니골라'라는 인물에 대해 연구를 안 한것 같습니다.
그가 누구였는지를 알면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를 쉽게 파악할 수 있는데,
이것을 중요하게 생각지 않아서 놓쳤습니다.
니골라는 일곱 집사 가운데서 제일 마지막에 언급된 자로서(행6:5) 훗날 복음에서 떠나
영지주의자가 되었습니다. 최초의 교회사가였던 유세비우스의 책에 잘 나타납니다.
꼭 유세비우스가 아니더라도 사도 바울이 에베소 지역에 보낸 에베소서와 디모데 전후서,
요한이 기록한 요한 일이삼서는 영지주의 이단의 득세로 인한 에베소 지역의 교회와
또 주변 여러 교회들(서머나, 버거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의 어려움을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서머나 교회 사자 역시 개인으로 언급합니다.
그가 마귀로부터(저자는 마귀가 된 자들) 홀로 죽도록 고난을 받게 된다는 관점으로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계2:10절의 십 일간의 환난을 어떻게 볼까요?
"그러므로 십 일은 서머나 교회 사자가 옥에 갇힌 후 살날이 십 일 남았다는 뜻이다.
...10은 성경에서 세상을 채우는 숫자, 인간이 채우는날 수를 의미한다"(p.178)
이 책을 통한 저자의 구원관도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구원파적인 구원론을 철저하게 배격합니다.
"니골라 당이 말하는 교훈과 같이 우리가 구원을 얻은 후 그다음 인간이 행하는 어떠한 것도
우리의 구원을 되돌릴 수 없다고 말한다면, 성령의 동행은 구원받은 자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된다"(p.182)
저자가 이 책을 쓰게 되었을 때 상황도 적절하게 묘사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계시록 책을 쓰면서 철저하게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기록했단 주장으로
권위를 세우려 하는데 이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며 결코 지혜롭지 못한 처사입니다.
이런 면에서 소향의 마라나타는 매우 지혜롭습니다.
"우선 이 글은 성령께서 내게 가르쳐주신 것이라 확신한다. 그러나 나는 사람으로서
그의 말씀을 때론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할 때도 있음을 알려주려 한다.
이 글은 어디까지나 성령이 계시하신 것 중 나의 이해력 안에서 완성된 글이며,
따라서 이 글을 쓰신 이는 오직 성령이시나 실수하고 바로 되지 못하다고 여겨지는 해석은
오직 나의 어리석음에서 오는 것임을 알아주길 바란다. 이 글은 결코 완벽하지 않다"(p.9)
어려운 가운데 계시록을 썼지만 아쉬운 점들이 많이 보입니다.
더 보완한다면 좋은 책이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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