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사회는 항상 분열의 조짐이 존재합니다.
좌파와 우파라는 프레임으로 서로를 정죄합니다.
교회 안에도 이런 프레임으로 분열의 씨앗이 자랍니다.
총신 안에도 이런 우매한 역사가 존재합니다.
신학의 선명성을 따라 간다면서 상대방을 좌파(자유주의)로,
자신을 우파(보수주의)로 설정합니다.
1979년 총신에서 주류와 비주류의 분열이 정치적인 사유로 발생했습니다.
다소 복잡한 상황이 뒤섞이면서 무엇이 본질인지 혼란을 느낄 수 있습니다.
"박형룡은 1959년 분열 이후(합동과 통합) 신앙의 순결성을 강조하며 총신과 교단을
'근본주의 분리주의 방향'으로 이끌고 가려고 하였고, 대부분의 총회 지도자들과 총신의 교수들은
평양신학교부터 내려오는 신앙전통을 계승하고 발전시켜 나가되, 근본주의 분리주의로 가는 것을
깊이 우려하였다.
...정통주의와 신앙의 순결을 강조하는 박형룡에게는 신앙의 순결을 강조하면서 자유주의와
WCC 에큐메니칼 운동에 대해 전투적인 입장을 가진 매킨타이어의 전투적 근본주의 노선,
신근본주의 분리주의에 깊은 동질감을 느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1960년 이후 박형룡과 총회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긴장관계가 존재했다.
신학교 안에서도 박형룡-박아론의 노선과 명신홍과 박윤선, 김희보, 김의환, 간하배의 노선 사이에는
미묘한 긴장관계가 존재했다.
...하지만 1978년 박형룡 박사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 비주류가 박형룡의 입장을 지지하는 정규오를
중심으로 한 비주류(호남)와 역사적 칼빈주의 전통을 견지하되 사회 문화적 책임을 중시하는 이영수를
중심으로 한 주류(영남)가 대립하면서 1979년 주류와 비주류의 분열이 이어졌다.
분열의 시작은 비주류가 신앙의 순결을 앞세우고 총신이 좌경화되었다며 박아론을 교장으로 방배동 총신을
설립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정규오 목사와 비주류는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설립을 반대하고, 김희보 교수를 문서설주의자로,
김의환을 신복음주의로, 신성종을 불트만주의자로, 차영배를 신정통주의자로 매도하고,
당시 총신의 교수들을 신학적으로 좌경화되었다고 주장했다"
(박용규, 총신 120년의 역사, 신앙, 평가(3), 신학지남, 2021년 겨울호, 2p. 173-174)
학문적인 차이로 인한 분열인지, 혹은 지역주의로 인한 분열인지 판단이 어렵지만,
실질적으로는 지역적 소외감을 분열의 단초로 보는 견해가 더 많습니다.
사사로운 교회정치와 지역적 권력독점은 반드시 분열을 초래합니다.
오늘날 교회도 지나치게 편향된 정치 프레임에 걸려서 스스로 타락하지 않나
염려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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