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으로 질병은 복음을 전하는 귀한 도구가 되었습니다.
심한 전염병은 기존의 종교들로 하여금 한계를 느끼게 하고,
그 깊이를 가름할 수 있는 좋은 도구였습니다.
기독교가 이방나라들에 확산될 때 질병은 기존 여러 종교들을 시험하였습니다.
그들의 종교가 질병 앞에서 무엇을 줄 수 있는지, 무기력한지를 드러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는 질병 앞에서 담담하게 치료하고, 돌볼 수 있는 능력을 드러냈습니다.
천국에 대한 소망이 크기에 죽어도 소망을 주었습니다.
또한 치료하다가 죽어도 순교자로 받들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21세기 등장한 코로나 앞에서 교회는 기존의 종교들처럼 무기력함을 드러냈습니다.
목회자들과 신학자들은 신학적인 접근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대중들에게 무엇을 줄 것인지 희미했습니다.
사회학자 로드니 스타크는 두 가지 문제를 던져줍니다.
"종종 인류 역사에서 자연재해나 사회적 재앙으로 촉발된 위기는 신앙의 위기로 발전했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이유는 재앙으로 인해 지배적 종교가 감당할 수 없는 난제를 떠안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무능은 두 가지 차원에서 일어난다.
첫째, 종교가 재앙이 왜 일어났는가에 대한 흡족한 해명을 제공하는데 실패한다.
둘째, 종교가 재앙 앞에서 무익하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다른 모든 비종교적인 방법이 역부족임이 드러나고, 초자연적인 수단만이 유일하게 도움을
구할 곳으로 남아 있을 때, 종교는 결정적 기로에 서게 된다."(기독교의 발흥, 로드니 스타크 저, 손현수 역, p.122)
세계적인 코로나 대 유행 앞에서 기존의 종교로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는 교회가 보여준 모습은
무기력한 모습 뿐입니다. 기독교 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종교들 또한 그렇습니다.
종교들이 자신의 지위를 의료계와 정치인들에게 맡긴 꼴입니다.
현대로 갈수록 기독교의 입지는 줄어들고 있습니다.
철학자들에게 지혜를, 상담자들에게 마음을, 교육자들에게 양육을, 의료인들에게 치료의 영역을 내어주고
설 자리를 잃어갑니다.
복지 또한 국가가 앞장서서 끌고 나갑니다.
이제 교회는 무엇을 해야하는지 그 폭이 매우 협소함을 느끼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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