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교회에서 방언에 대한 문제들이 민감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에 나타난 방언이 진짜인지, 아니면 사탄이 준 방언인지 혼란스러워 합니다.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오순절 성령 임재의 결과 나타난 외국어 방언과,
고린도 전서 12-14장에 나오는 방언이 같은 것인지 토론이 일어납니다.
간단하게 정리해보면,
1) 사도행전 2장의 방언은 외국어로서 성령의 은사 - 논란의 여지 없음
2) 고전 12-14장에 나오는 방언은 외국어만이 진짜이고 나머지 알지 못하는 말로 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않았다는 견해
방언이 외국어라는 견해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 큰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외국어 뿐만 아니라 알지 못하는 언어(천사의 방언) 역시 방언이라는 견해에 대해서 격렬한 논쟁이 벌어집니다.
토론의 폭을 좁혀서 고린도 교회에서 <이 땅에 없는 방언들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논해야 합니다.
고린도 교회는 초대교회의 대표적인 이단인 영지주의 영향을 크게 받았습니다.
은사가 활발했던 고린도 교회에서 영지주의자들은 성령으로부터 방언의 은사를 받지 아니하였는데도
자신들이 신령한 지식을 가졌다고 주장하면서 인위적으로 방언을 만들어 냈습니다.
* 만일 누구든지 <자기를 선지자나 혹은 신령한 자로 생각하거든>, 내가 너희에게 편지하는 이 글이 주의 명령인 줄 알라(고전14:37)
이들이 만든 방언을 미혹된 사람들이 외워서 사용합니다.
마치 고린도 교회에서 성령의 은사로 받은 자들이 사용하는 방언과 유사합니다.
본질로 돌아가서 방언이란 무엇입니까?
자신이 배우지 않았던 타국어를 언급합니다.
그러면 그것이 방언의 끝입니까?
타국어를 통역할 필요가 있을까요?
그 나라 사람이 들으면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가요?
통변의 은사가 필요함을 볼 때 하나님과의 만남에서 사용된 언어(?) 또한 방언이라 볼 수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의 영지주의자들도 이런 방언에 대해 흉내를 냅니다.
당대의 영지주의자들은 모음을 뺀 자음으로된 방언을 만들어냈습니다.
하나님이 아닌 최고의 신과 대화를 나누기 위한 말이라 만들어 냈습니다.
이것이 고린도 교회 방언 문제의 핵심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방언과 더불어 그것을 통변하라 합니다.
거짓 방언이 발을 못 붙이게 하려 함입니다.
우리가 방언에 대해 다 알수는 없지만 방언은 성령이 주시는 은사 가운데 하나입니다.
방언의 은사는 어느 한 순간에 없어지지 않습니다.
재림 때가 되어서 얼굴과 얼굴을 맞대는 상황이 올 때 비로소 더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 때는 세상 모든 언어가 하나로 통일 될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과 천사들이 사용하는 언어와 동일하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은사가 그렇듯이 주 재림 때까지 지속됩니다.
다 알지 못한 부분들은 관용으로 대하여서 더 논란이 없어야 합니다.
어떤 은사든 자신의 유익을 위해 사용하기 시작하면 부작용이 일어납니다.
방언 뿐만 아니라 예언, 신유, 영분별 등 모든 은사가 그렇습니다.
부작용을 보면서 원래 주신 성령의 은사들을 정죄하면 안됩니다.
성령의 선물로 주신 은사들을 귀하게 여기며, 믿지 않는 자들이나 교회에 폐가 되지 않도록
주의해서 사용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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