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 율법을 명확하게 나누기를 좋아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 자들은 둘 사이의 차이점을 부각시킵니다.
각각의 영광이 다르기에(고후3장 참고) 그런 시각이 생길 수 있습니다만
어떤 경우는 매우 심각한 상태에 처하게 됩니다.
율법은 육체만 정결하게 한다는 주장을 하기도 합니다.
제사를 드리는 자의 양심은 깨끗하게 할 수 없는 <한계를 지닌 죄사함>을 언급합니다.
결국 이런 한계를 지닌 죄사함은 <결함이 있는 죄사함>으로 연결됩니다.
만일 이런 일이 사실이라면 누구의 잘못입니까?
율법을 제정하고 속죄 제도를 주신 하나님의 지식이 빈곤해서일까요?
한 마디로 이런 해석들은 오해에서 시작되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 이 장막은 현재까지의 비유니 이에 따라 드리는 예물과 제사는 섬기는 자를 그 <양심상>
온전하게 할 수 없나니(히9:9)
옛 언약 아래서 동물의 잡아 그 피로 제사를 드렸던 백성들의 마음에는 죄를 지을 때마다 되풀이 되는
이런 제도를 보면서, 자신이 단 번에 깨끗함을 받지 못했음을 알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동물의 죽음을 보며 이것이 영원한 속죄 제사가 아님을 알게 됨으로, 그 양심으로 온전한 제사를
사모하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제사제도는 하나님이 의도하신 것입니다.
실체되는 예수님이 오시기까지 계획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제사가 구약 백성들의 죄를 어디까지 속죄해줄까요?
많은 사람들이 또 오해를 합니다. 그리고 주저주저 합니다.
*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 (히9:13)
위 구절을 통해 보면 구약의 제사의 효능이 비록 짐승의 피이지만 그 피가 그리스도의 피를 지정하며,
대속의 의미를 지녔기에 죄를 정결하게 하며, 거룩하게 만들어 줍니다.
모형이지만 짐승의 피로 씻음이 구약 백성들의 죄를 속하는데 아무런 하자가 없습니다.
어떤 자들은 위 구절에서 육체만 씻을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성경은 인간을 육체와 영혼을 가진 자들로 보며,
결코 분리해서 죄 용서함과 거룩함을 주지 않습니다.
구약에서 제사를 드리는 자들의 양심은 온전한 속제 제물을 드려 죄가 더 생각나지 않고, 반복되지 않는 제사의 등장을
고대했습니다. 그 일을 예수님이 오셔서 성취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자신의 몸을 단 번에 드려 모든 제사를 완성시킨 것은 곧 제사를 드리는 자의 <양심까지도 완전>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히9:14)
구약의 속제 제사도 비록 양심까지 자유롭게 하는데 있어서 한계는 있지만 유효했는데, 예수님이 자신의 몸을 드려 단 번에 성취하신
속제 제사는 구약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월등하며, 드리는 자의 양심까지도 온전케 됨을 강조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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