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주의와 알미니안주의자들이 종종 어느 것이 먼저인지 순서를 가지고 논쟁했습니다.
자유의지에 근거해서 회개가 먼저인지, 아니면 은혜에 따라 믿음이 먼저인지 순서에 민감합니다.
*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막1:15)
1. 복음과 율법은 무엇인가?
회개와 믿음의 순서를 논하기 전 성경이 말하는 복음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복음서는 그 이름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 막1:1> 혹은 <하나님의 복음 - 막1:14>이라 합니다.
모두 같은 의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복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공생애 시작부터 복음을 믿으라(막1:15)고 외칩니다.
<이미 오래 전부터 있었던 복음>을 제대로 믿으라고 권면하는 것 같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복음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새로운 내용도 없습니다.
도대체 어찌 된 일입니까?
오래 전 무엇이 복음이었습니까?
* ... <복음 전함을 먼저 받은 자들>은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들어가지 못하였으므로(히4:6)
복음을 먼저 받았던 구약 성도들이 무엇을 순종하지 않았습니까?
* ..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히4:2)
구약 백성들이 말씀으로 들었던 것은 크게 <약속들과 율법>으로 볼 수 있습니다.
약속들과 율법은 그리스도의 오심과 그것이 어떤 상태에서 오시는가에 대한 것입니다.
공통적으로 본질은 그리스도입니다.
율법은 그 자체로는 아무런 의를 제공하지 못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율법 자체를 지키면서 그것이 하나님의 의인줄 알았습니다.
거기서 그리스도를 보지 못함으로 결국 그리스도를 배척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율법을 통해 그리스도를 보게 될 때 비로소 복음이 됩니다.
그리스도는 율법이 가리키는 의의 실체가 됩니다.
*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롬3:21)
율법은 그리스도의 의를 증거한 도구입니다.
율법은 그리스도에게 인도하는 선생의 역할을 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복음이 됩니다.
바울과 논쟁했던 많은 사람들이 율법 그 자체를 의로 보거나,
혹은 그리스도가 율법의 완성됨을 몰랐기에 새 언약의 복음과 율법을 동시에 지키려했던 자들입니다.
2. 회개와 믿음
구약의 약속들과 율법 속에 복음이 들어 있습니다.
거기서 그리스도를 본 자들은 곧 복음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회개와 믿음중 어느 것이 먼저일까요?
복음을 가졌던 구약 이스라엘이 어떻게 회개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믿음을 가질 수 있을까요?
회개하고 믿을 수 있도록 먼저 깨닫는 은혜가 있어야하지 않을까요?
* 내 눈을 <열어서> 주의 율법에서 놀라운 것을 보게 하소서(시119:18)
율법을 조명한 존재는 <성령> 입니다.
성령이 말씀을 조명할 때 비로소 보게 됩니다.
성소의 금 촛대를 보면 그 위에 켜져 있는 일곱 등불을 알 수 있습니다.
금 촛대는 성도를 상징하며(계1:20), 켠 등불 일곱은 성령을 상징합니다.
* ... 보좌 앞에 <켠 등불 일곱>이 있으니 이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계4:5)
성소에 있는 금 촛대와 그 위의 켠 등불은 성도와 연합되어 있는 성령을 의미합니다.
즉 구약 성도들은 성령과 연합된 새 사람이며 거룩한 존재임을 증거합니다.
복음서를 읽으면서 이러한 성령의 임재를 망각하면 말씀이 <종교적 교훈>으로 전락됩니다.
성령의 내주함과 조명 속에서 복음(말씀)을 보게 됨으로 회개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개의 기준은 내 생각이나 양심이 아닙니다.
철저하게 복음이며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에 적합한 상태가 기준이 됩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며,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못한 것을 회개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개하며 복음을 <믿으라>에서 믿음은 단순히 생각하고 마음으로 다짐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믿으라는 믿음은 복음대로 행하라는 폭 넓은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칼빈주의와 알미니안이 어느 것이 먼저인가 하는 논쟁은 실상 무의미한 것이 됩니다.
우리는 이러한 흐름을 알고 나면 그런 논쟁이 불필요함을 자동적으로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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