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보이지 않은 용어들은 설명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영혼, 혼, 마음, 정성, 뜻, 정신 등은 비슷하면서도 다른 의미로 사용됩니다.
이런 차원에서 '생기' 역시 매우 어려운 단어입니다.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많은 차이를 드러냅니다.
* 삼 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그들 속에 들어가매 그들이 발로 일어서고,
구경하는 자들이 크게 두려워하더라(계11:11)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온 짐승(적그리스도)에 의해 두 증인은 죽임을 당했습니다.
삼 일 반 동안 그들의 시신(육체)은 큰 길거리에 버려졌고,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죽음을
기뻐했습니다(계11:9-10). 비록 이스라엘에서 일어난 사건이지만 세계적인 관심거리가
되었습니다. 두 증인 상대한 자가 바로 세계적 지도자인 적그리스도이기 때문입니다(계11:7).
혹자는 두 증인이 다시 살아남을 부활이라 주장합니다.
다수의 사람들도 그런 견해를 취합니다.
두 증인이 증거한 것이 바로 '예수는 메시아'라는 것이므로 부활이라 생각한 것입니다.
두 증인의 메시지는 이스라엘에게 예수께서 메시아라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부활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부활은 성령께서 역사하셔야 가능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철저하게 부활을 성령의 일로 한정합니다.
예수님의 부활도 그렇고(롬1:4), 성도들의 부활도 마찬가지입니다(롬8:11).
그런데 두 증인의 부활은 <생기>가 들어갔기에 가능했습니다(계11:11).
두 증인에게 들어간 생기는 무엇일까요?
원문을 보니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생명의 영>으로 표현됩니다.
생기(프뉴마티 조에스 - a spirit of life)는 단수로 사용되며, 생명 혹은 영생으로도 쓰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었다고 번역했습니다.
이것이 올바른 번역인지는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계시록 11:11과 비슷하지만 단지 '프뉴마(영)'만 있고, 조에(생명, 영생)라는 말은 없습니다.
결국 두 증인에게 들어간 것과 적그리스도의 우상에게 들어간 것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 그(거짓 선지자)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에게
말하게 하고...(계13:15)
성도들이 죽으면 나사로처럼 그리고 예수님처럼 그 영은 하늘 아버지가 있는 낙원으로
갑니다(눅23:43). 그러면 다시 육체로 살아났던 나사로 같은 경우는 어떻게 된 것일까요?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다시 살아났을 때의 묘사를 볼 때, 죽을 때 떠났던 영이 다시 돌아왔다고
보는 것이 제일 합당합니다(눅8:55).
반면 적그리스도의 우상은 처음부터 생명이 없습니다.
다만 일시적으로 말하게 하기 위해 사탄이 거짓 영을 그 속에 넣었습니다.
두 증인에게 다시 임한 <생기>는 그들의 생명을 지탱해주는 영혼으로 보아야 합니다.
야이로 딸에게 돌아와서 다시 일어나게 하신 것과 동일합니다.
생기가 들어오자 두 증인은 스스로의 힘을 통해 두 발로 다시 일어났습니다.
주변에 있던 수많은 악한 자들이 두 증인이 다시 살아난 것을 눈으로 목격했습니다.
만일 부활했다면 악인들의 눈에 보이겠습니까?
그러면 두 증인이 예수님처럼 승천했을 때의 상태는 어떤 것일까요?
예수님처럼 부활의 몸으로 올라갔을까요?
아니면 엘리야처럼 육체의 몸으로 올라갔을까요?
두 증인은 스스로의 힘으로 올라간 것이 아니라 <구름>을 타고 올라갔습니다(계11:12).
그 광경을 두 증인을 죽였던 악인들이 생생하게 쳐다보고 있습니다(계11:12).
이 역시 엘리야처럼 육체의 몸으로 올라갔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생기란 단어가 포괄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고 봅니다.
더 구체적으로 보면 떠났던 사람의 영혼이 다시 돌아와서 살아난 것입니다.
표현이 다소 애매하더라도 이런 과정은 단 하나 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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