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계시록토론

일곱 교회를 통해 본 올바른 구원론은?

오은환 2024. 2. 8. 13:28

해석이란 종종 <현재성>이 요구하는 것에 영향을 받습니다. 

예를 들어 세종대왕이 만든 한글의 어떤 면을 강조할 것인지는 각 시대마다 다릅니다. 

자주성을 강조할 때가 있고, 편리함을 말하고 싶을 때가 있으며, 과학적인 언어라는 것을
드러내고 싶을 때도 있는 것과 같습니다.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 내용에서 강조하고 싶은 것이 무엇입니까?

역사적 사실을 자세히 알고 싶기도 하고, 배경도 관심이 있습니다.
또 예수님은 교회들에게 무엇을 강조했는지도 찾고 싶습니다. 

 

일곱 교회에 보낸 편지를 통해(계2-3) 올바른 구원론을 밝혀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구원론이 무너지면 교회가 무너지는 것이 따라옵니다. 

오늘날 천주교나 개신교의 넓은 구원론은 '좁은 문'이라는 예수님의 가르침과 상반됩니다. 

칭의가 곧 구원의 끝이라는 가르침은 많은 생명을 실족시키는 사상입니다. 

성화가 구원과 무관하다는 가르침은 성도들에게 도덕적 결함을 일으켰습니다.  

 

①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계2:5) - 에베소 교회

②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계2:10) 

   - 서머나 교회

③ (니골라 당의 행위를)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가서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계2:16) - 버가모 교회

④ 회개할 기회를 주었지만 회개하지 않는 자들을 침상과 큰 환난과 사망에게 던진다(계2:21-23)

   - 두아디라 교회

⑤ 흰 옷을 더립힌 자들(계3:4) - 사데 교회

⑥ 면류관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애쓰지 않은 자들은(계3:11) - 빌라델비아 교회

뜻뜻미지근하며 열심을 내지 않음(계3:16, 19) - 라오디게아 교회

 

일곱 교회에게 회개를 촉구하는 것은 구원과 관계가 있습니다.

이들 교회들이 칭의를 얻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이미 칭의를 통해 정결함을 받고, 거룩한 성령이 내주하여 거듭난 자가 된 상태입니다.

이런 그들이 성화를 멀리하고 칭의 되었음을 에서처럼 가볍게 여깁니다.

 

여기서 칭의와 성화의 지속적인 관계를 거론하며 예수님은 성화를 통해 칭의를 유효하게

하려 합니다. 성화가 구원에 있어서 깊은 관련이 있음을 드러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