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을 연구하는 많은 신학자들이 사도 요한을 악한 자로 묘사합니다.
계시를 받았지만 제멋대로 각색한 인물을 사도 바로 요한으로 보고 있습니다.
최근 계시록 흐름은 <사도 요한의 신학 찾기>에 집중합니다.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가..."(계1:4,8, 4:8)
많은 신학자들이 이 구절을 통해 사도 요한이 각색한 계시록의 단어들을 찾습니다.
특별히 "장차 오실 이"는 성부 하나님이 말씀한 것이 아니고, 요한이 첨부한 내용물
이라는 주장입니다. 대표적으로 한국의 이필O 교수가 그렇습니다.
"너 보는 것을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등
<일곱 교회>에 보내라"(계1:11)
고신의 송영목 교수는 이 부분을 이렇게 진술합니다.
"그런데 사도 요한은 소아시아의 골로새교회를 알고 있었음에도 <의도적으로>
수신자에서 제외한다. 왜냐하면 숫자 '7'은 완전이나 충만을 상징하므로 7교회는
세상의 모든 교회를 염두해 두는 표현이다."(요한계시록 주석, SFC, 송영목, p. 26)
불트만과 그의 제자들이 복음서의 영감성을 믿지 아니하고, 예수님의 제자들이 교회를 위해
각색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그런 단어들을 찾아내는데 혈안이 되었습니다.
지금 계시록을 연구하는 개혁주의 신학자들도 그런 동일한 일을 행하고 있습니다.
계시록에서 요한이 첨가했다는 것들을 찾고 있고, 요한이 이해하지 못해 잘못 전달한
것들을 발견하고자 합니다.
불트만을 욕했던 개혁주의자들이 동일한 길을 가고 있으니
누군가는 멈춰야 한다고 소리쳐야 합니다.
'5. 계시록토론' 카테고리의 다른 글
네 생물 미스테리 (0) | 2024.12.07 |
---|---|
위험한 직설적 표현 (0) | 2024.12.07 |
백투 예루살렘(Back To Jerusalem) (0) | 2024.08.08 |
새 예루살렘 성 - 인종 전시관 (1) | 2024.02.24 |
새신자에게 종말을 가르친 바울 (0) | 2024.02.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