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주의 교회는 바울신학에 근거를 두려합니다.
이방인 중심의 바울신학을 강조하지만,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쓴 성경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약점을 지녔습니다.
특별히 '의'에 대한 개념 부분이 그렇습니다.
결국 구원론까지 영향을 주어서 심각한 문제를 남겨둔 채 침묵합니다.
구원에 있어서 칭의를 지나치게 강조하면서 성화를 약화시켰습니다.
성화는 구원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늬앙스를 풍깁니다.
바울의 '의 개념'은 칭의에 한정되었을까요? 성화를 포함할까요?
*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딤후4:8)
바울은 자신과 성도들이 받을 '의의 면류관'을 칭의에 중점을 둔 것이 아니라 성화의
과정을 마친 자들에게 주는 선물로 봅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된 것을 끝까지 간직한 자들에게 의의 면류관이 수여됩니다.
* 나는 선한 싸움을 마치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딤후4:7)
예수님은 죽기까지 충성한 성도들에게 생명의 면류관을 약속합니다.
자신이 충성된 증인으로 죽었던 것처럼 동일한 것을 요구합니다.
*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계2:10)
10이란 숫자는 <꽉 찬> 것을 상징합니다.
특별히 의인이 악인에게 받는 시험의 충만함을 표현할 때 사용됩니다(창31:7, 41, 민14:22,
느4:12, 욥19:3).
성도의 인생에서 일어난 성화의 모든 과정을 포함합니다.
바울과 예수님은 의를 유지했기에 생명(영생, 구원)의 면류관을 주겠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 유지함도 자신의 힘이 아닌 성령의 힘주심을 통해서 이뤄진 것입니다.
바울이 자주 사용하는 단어로 보면 <그리스도 안에> 있었기에 주신 선물입니다.
칭의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시작이라면 성화는 끝까지 그 안에 거함을 의미합니다.
의와 생명의 면류관은 영광스런 부활의 몸으로 변화됨입니다.
흙에 속한 몸이 주님이 오실 때 곧 재림의 순간에 영광의 몸 곧 주님과 동일한 부활의 몸으로
변화됨입니다.
*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빌3:21)
예수님은 우리가 받을 면류관이 빼앗길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
마치 에서처럼 소홀히 여기면 빼앗기는 것과 같습니다.
생명(구원, 영생)의 소중함을 알았다면 굳게 붙잡아야 합니다.
*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계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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