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계시록토론

십사만 사천에 관한 개혁주의 관점

오은환 2025. 12. 24. 14:49

14만 4천이 누구인가에 대한 개혁주의 관점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요?

옳은 것도 있지만 결정적으로 실수한 것도 공존합니다. 

먼저 옳은 해석은, 

 

① 14만 4천은 상징이다(O) 

② 14만 4천은 교회 곧 모든 성도를 상징한다(O)

③ 14만 4천은 어떤 직분을 구분하는 표가 아니다(O)

 

잘못된 해석은, 

 

➊ 14만 4천은 <초림부터 재림 사이>의 모든 성도들이다(X)

➋ 14만 4천은 <창조부터 재림 사이>의 모든 성도들이다(X)

➌ 14만 4천은 <구원받기 위해> 인침을 받았다(X)

 

개혁주의 교회들이나 신학자들의 실수는 십사만 사천을 모든 시대 혹은 초림부터 재림까지의 

시간으로 확정한 것입니다. 

이들에게서는 특정한 시대, 특정한 사건을 당하는 성도들이란 개념이 없습니다. 

그래서 구원받기 위해 <천사들로부터 인침을 받았다>라는 엉뚱한 프레임을 설정했습니다.

구원받기 위해서는 천사가 아니라 성령의 인치심을 받아야 합니다(엡4:30).

올바른 해석은, 

 

① 14만 4천은 상징수로 모든 성도들을 가리킨다(O)

② 14만 4천은 적그리스도의 등장으로 인하여 핍박을 받는 성도들로 한정한다(O)

③ 14만 4천은 하나님의 심판재앙들(인, 나팔, 대접 재앙)로부터 성도들을 구별하여 보호하기

    위해 인침을 받은 모든 성도들이며, 주의 재림을 앞둔 시간으로 한정한다(O)

14만 4천은 구원받기 위해 인친 것이 아니다. 이미 구원받았기에 '하나님의 종들'이란 호칭이

   따른다. 인침을 받는 이유와 목적은 심판재앙들에서 구별함을 받고 보호받기 위함이다(O

 

14만 4천에 대한 명확한 이해는, 

 

① 하나님의 인침을 받음으로 심판재앙들로부터 구별되어 보호받는다(계7:1-8)

② 적그리스도의 핍박 가운데 많은 순교자들이 발생한다(계14:1-5) - 처음 익은 열매(순교자들)

③ 핍박을 당하는 가운데 살아서 주님을 맞이한다(계15:2-4)

    - 나중 익은 열매(살아서 주님을 맞이한 성도들)

④ 순교자든 살아서 주님을 맞이한 성도들이든, 당대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반드시 대환난을

    통과한다(계7:14).

 

왜 요한은 이런 특별한 시기 - 적그리스도의 핍박 - 에 주목할까요?

먼저는 주의 재림을 준비하는 성도들이기 때문이며, 그들의 삶이 비천하게 보일지라도

존귀하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이들에게는 어린 양의 혼인잔치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요한은 종종 대환난을 당하면서 죽은 순교자들과 살아서 맞이한 성도들을 따로 묘사합니다. 

그렇다고 창조로부터 적그리스도 이전 시대의 성도들에게 어떤 불이익을 가하지도 않습니다. 

그들 역시 모두 어린 양의 혼인잔치에 참여하기 때문입니다.

 

계20:4절 역시 그렇습니다. 

요한은 보좌에 앉은 모든(창조부터 재림까지) 성도들을 보았습니다. 

특별히 그 가운데서 일부 그룹을 보았습니다. 

적그리스도의 핍박 아래서 <목베임>을 당한 순교자 그룹들과, 

적그리스도의 핍박 아래서 <살아서 주님을 맞이한 그룹들> 입니다. 

 

혹자는 개혁주의 해석이 틀렸다고 할 수 있느냐며 반문할 수 있습니다만

계시록을 정확하게 해석하기 위해서는 저의 견해와 개혁주의 견해를 선명하게 구분해야

합니다.  

구분하지 않은 결과 의도하지 않았던 무천년주의 주장이 깊은 뿌리를 내린 것입니다. 

역사적 전천년주의 역시 불행하게도 이런 구분을 하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