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구원론

성령의 내주 없이 은사가 주어질 수 있는가?

오은환 2015. 1. 3. 22:07

은사가 주어지는 시기는 뚜렷하게 정할 수 없습니다. 

성령께서 필요를 따라 주시기 때문입니다.

 * 이 모든 일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고전12:11)

 

분명한 것은 은사는 중생(거듭남)보다는 뒤에 일어납니다. 

물론 특별한 경우에는 거듭날 때 어떤 은사들을 주기도 합니다만,

성숙하게 자랄 때 필요한 은사들을 주심이 상식적입니다. 

 

구약성경을 읽으면서 때때로 성령의 <내주와 은사를 혼동>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구약에서 성령의 내주를 알지 못하기에 <은사를 내주로 잘못 생각>합니다. 

 

1. 모세 

 * 모세가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그의 영>을 모든 백성에게 주사,

     다 <선지자>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민11:29)

 

기본적으로 하나님은 죄인과 동행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동행한다고 했던 구약의 백성들은 - 에녹, 노아, 아브라함 -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죄 사함을

받았고, 그 결과 아버지의 성령이 내주하는 거룩한 상태에 있습니다.

 

모세가 언급했던 그의 모든 백성들이 성령으로 다 선지자 되기를 원한다는 구절은 <성령의 내주>를 소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은사를 주심으로 선지자처럼 예언하기를 원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같은 문맥에서 여호와의 영이 임하자 70 인 장로들이 무엇을 했습니까?

모두 예언을 했습니다.

 *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 강림하사 모세에게 말씀하시고, 그에게 임한 영을 칠십 장로에게도 임하게 하시니,

   영이 임하신 때에 그들이 <예언을 하다가> 다시는 하지 아니하였더라(민11:25) 

 

2. 사울 - 이스라엘의 초대 왕

 

 * 네게는 <여호와의 영>이 <크게> 임하리니 너도 그들과 함께 <예언>을 하고, 변하여 <새 사람>이 되리라

   (삼상10:6)

 

대부분의 신학자들은 사울이 왕이 될 때, 성령주심에 대하여 <내주>로 해석하려 하려 합니다.

다시 말하면 사울이 왕이 되기 전에는 성령이 내주한 사람이 아니었는데, 왕이 되어야 하기에 특별히 그에게만

성령이 내주하게 하셨다고 해석합니다. 어떻습니까?

 

그러나 본문은 여러 가지 면에서 <성령의 내주>가 아니라 <은사 수여>라고 봄이 적합합니다.

그 이유는 첫째로 <크게 임했다>라는 말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구약에서는 성령 충만이란 말을 찾아보기 어렵지만 다른 말로 <크게 임했다>로 표현했습니다. 

 

성령 세례시에 성령 충만의 상태가 될 수 있지만 구약에서는 특정한 상황에서 종종 표현합니다.

사사들 역시 특별한 상황에서 자주 나타납니다(삿3:10, 6:34, 11:29)

특히 삼손에게 있어서 다급한 순간에 자주 나타납니다.

 * ... 여호와의 영이 그를 움직이기 시작하셨더라(삿13:25)

 *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갑자기 임하시매...(삿14:19, 15:14)

 

사울 왕에게 성령이 임하심으로 나타난 현상은 <예언>을 하는 것입니다.

예언은 당연히 성령의 은사입니다.

 *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이 모든 일은 한 성령이 행하사....(고전12:10-11)

 

마지막으로 나타난 <새 사람>은 거듭남을 말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평범한 사람이었던 사울이 온 백성을 다스리는 <왕>의 특별한 위치에 오를 수 있는 힘이 주어졌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구약을 읽으면서 성도들을 자꾸 서로 다른 존재들로 보려 하는 것을 지양해야 합니다.

구약 백성 중에서 어떤 자는 성령을 주시고, 또 다른 자들은 성령이 없는 상태로 신앙생활 한다는 것은

전혀 복음적이지 않는 생각입니다. 

 

모든 구약 백성들은 성령이 내주하시기에 성령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몇몇 사람들에게 독특한 은사들을 더 해 주십니다. 

평범한 사람들 역시 필요에 따라 은사들을 받아 봉사합니다.  

 

성령의 내주가 없는 은사 수여는 절대 없습니다.

내주가 먼저 있었고 은사는 후에 주어짐이 일반적인 순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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