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신학은 신학의 뼈대를 놓은 거대한 작업입니다.
방대한 성경, 광대하신 하나님을 언급하는 일이 사실 매우 어렵습니다.
어느 것 하나 삐끗하면 순식간에 무너지게 되며, 그 건물은 외면을 당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조직신학을 읽다보면 한계점들을 사실적으로 드러내기도 합니다.
그리고 더 좋은 의견들의 등장을 고대하기도 합니다.
뻘콥의 가장 견고한 틀은 인간의 구원에 대한 변함없는 구조입니다.
모든 인간은 정죄아래에 있기에 구원에 있어서 두 가지가 반드시 필요함을 강조합니다.
(기독교 신학개론, 루이스 뻘콥 저, 신윤복 역 p.160)
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속죄가 필요합니다
② 구원에 이르게 하는 성령의 중생케 하는 권능을 필요로 합니다
모든 시대, 모든 인간에게 있어서 구원에 이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위의 두 가지 은혜를 거쳐야 합니다.
뻘콥은 구약 성도들 역시 이런 틀 아래에 있음을 선언합니다.
스가랴 6:13절을 통해 성부와 성자의 <평화의 의논>을 통해 그 의미를 전달합니다.
다만 뻘콥에게 아쉬운 점은 구약 백성들에게 <성령의 내주에 대해 침묵>하는 것입니다.
모든 인류가 반드시 거쳐야 하는 은혜인데 이 부분을 다루지 못하고 책을 마무리 합니다.
세계적으로 최고의 조직신학이라 칭송받는 책인데 아쉽게도 남겨진 부분은 우리 모두가 이루어나가야
할 과제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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