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만큼 우리에게 중요한 문제로 다가온 것이 있을까요?
너무도 소중하기에 여러 가지 이름으로 알려줍니다.
영생을 얻는 것, 천국에 들어가는 것,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는 것이 모두 구원을 얻는 것과
동의어 입니다.
구원론에 관한 여러 논쟁들이 많은데, 너무 좁게 접근해서 다른 좋은 도구들을 놓치고 있습니다.
계시록을 통해 구원과 동일한 용어들을 살펴봄으로 여러 유익들을 얻을 수 있습니다.
1. 이기는 자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란 틀을 가진 사람들은 늘 곤란한 상황에 빠집니다.
예수님을 처음 믿을 때 이기는 자가 정해진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처음 믿음을 끝까지 견지할 때 이기는 자가 됩니다.
*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계2:26)
사본을 보면 각각의 정관사가 사용되어서 서로 다른 존재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이기는 자는 두아디라 교회의 교우들에게 직접적으로 해당한다고 보면,
끝까지 예수님의 일을 지키는 자는 종말론적으로 재림이 임박한 시점의 강한 핍박에서도
믿음을 지키는 교회 성도들을 언급함이라 볼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는 이기는 자나 끝까지 예수님의 일을 지키는 자들은 모두 성도들을 가리킵니다.
누가 이기는 자가 됩니까?
주님이 올 때까지 진리를 굳건하게 붙잡은 자들입니다.
* 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계2:25)
*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계3:11)
구원의 보증이란 대속의 은혜를 통해 성령의 내주와 거듭남으로 인한 진리를 주님 앞에 설 때까지 굳게 붙잡고
있을 때 실체가 됩니다.
2. 흰 옷을 입은 자 = 흰 옷을 더럽히지 않은 자
누가 흰 옷을 입을 수 있습니까?
죄인의 죄가 사해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흰 옷을 입는 것입니다.
인간의 죄는 그리스도의 대속 이외에는 사함을 받을 길이 없습니다.
*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행4:12)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죄 사함을 받은 사람들은 반드시 성령을 선물로 받습니다.
죄 사함만으로 끝나지 않고 거룩한 성령이 내주하심으로 죄 사함의 은혜가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로 발전됩니다.
성령이 내주하심으로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할 힘이 생기고(신30:6, 롬5:5), 성화의 성숙한 삶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혼동스러워 하는 것이 있는데, <대속을 믿고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들이 실족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이 문제는 구원론의 최대 논쟁거리가 되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를 다루는 것을 부담스러워 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지 찾아보면 이런 질문들이 우리가 져야할 부담스런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① 생명책에 기록된 이름이 지워질 수 있습니까? 예, 있습니다(계3:4-5).
② 흰 옷을 입은 자들이 다시 더러워질 수 있습니까? 예, 그렇습니다(계3:4-5)
③ 성도들이 성령을 훼방하는 죄를 범할 수 있습니까? 예, 있습니다.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었거나 흰 옷을 입었다는 말은 곧 대속을 받았고, 그 결과 성령을 받았다는 증거입니다.
어떤 자들이 다시 타락하게 될까요?
대속의 은혜를 거부하고, 성령을 거역하고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는 자들입니다(사63:9-14).
3.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계22:14)
더러운 것이 묻었으면 옷을 빨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일곱 교회에 보낸 메시지를 통해 많은 성도들이 미혹을 받아 자신이 입은 옷이 더러워졌다고 경고합니다.
이들은 소중한 복음을 떠나기도 했고, 또 떠나려고 심중에 생각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이런 자들을 향해 회개를 촉구합니다.
회개가 일어나지 않으면 이들 역시 진노의 대상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을 구원과 연관시켜 보아야 합니다.
성도란 대속의 은혜와 그 결과 임한 성령의 내주 속에서 구원이 보증되어 있습니다.
구원의 보증은 실제적으로 그 일이 일어날 때까지 잘 지켜져야 합니다.
4. 믿음을 지키는 자(계14:12) = 말씀을 지키는 자(계22:7)
믿음이나 말씀을 지킨다는 의미는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성령은 말씀을 조명합니다.
사도들이 언급한 성령을 따라 살아간다는 말은 곧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 됩니다.
이런 순종의 삶미 곧 믿음을 지키는 자의 모습이라 볼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삶의 형태가 어느 한 순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성령이 내주하는 동안 지속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평생 예수님을 구세주로 고백하듯이 성령의 인도하심 역시 중단되지 않습니다.
성령이 함께 하지 않는 순간 우리에게 주신 보증은 그 효력을 상실합니다.
계시록을 통해 보여주는 구원 역시 복음서의 말씀과 동일합니다.
그리고 구약까지도 구원의 길이 변함없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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