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시록 7장에 나오는 14만 4천과 흰 옷 입은 수많은 무리들에 대하여 일반적으로 동일한 인물들로 봅니다.
무천년이나 역사적 전천년의 일반적인 견해들이 그것을 수용합니다.
그러나 일부 세대주의나 역사적 전천년주의에서도 다른 견해를 주장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유대인의 14만 4천명이라는 견해와 종말에 일할 사명자들의 수로 보기도 합니다.
성경으로 돌아가서 두 개의 스토리가 동일한지 아닌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1. 구조적으로 본 동일 사건
계시록은 요한이 보았고 54회(수동태로 보였거나), 들었고 73회(수동태로 들렸거나, 말했거나),
보고 들은 것 3회를 기록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보거나 듣거나 혹은 보거 듣거나 하는 표현을 단순하게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하나의 사건 안에서 일정한 형태가 존재하기도 합니다.
6장의 인 재앙들이 펼쳐질 때, 하나의 사건 안에서, 먼저 <들으니>란 말과 함께 <보니>가 따라 옵니다.
① 첫째 인... 그 때에 내가 <들으니>...이에 내가 <보니> 흰 말이 있는데...(계6:1-2)
② 둘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들으니>...이에 다른 붉은 말이 나오더라(계6:3-4)
③ 세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들으니>...내가 <보니> 검은 말이 나오는데...(계6:5)
④ 넷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넷째 생물의 음성을 <들으니>...내가 <보매> 청황색 말이 나오는데...(계6:7-8)
7장의 구조 역시 동일합니다.
요한은 먼저 천사들이 하나님의 종들 즉 성도들에게 인치는 일을 <보여 - 계7:1,2> 줍니다.
그 가운데서 인치심을 받을 숫자가 14만 4천 명이라고 <들려 - 계7:4> 줍니다.
그리고 흰 옷 입은 수많은 무리들이 등장하는데 요한은 이것을 들은 것이 아니라 <보았>습니다(계7:9).
듣고 보거나 혹은 보고 듣는 형태가 화답형식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2. 시간적으로 동일한 시점
하나님의 종들이 인치심을 받은 시점은 심판 재앙이 시작되기 직전입니다.
악인들을 향한 진노의 심판 재앙들이 내릴 때 성도들을 보호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인치심의 시점은 성도들에게 대 환난의 핍박이 일어나는 시점과 동일합니다.
심판 재앙들은 성도들을 핍박하는 악인들에 대한 갚음의 성격을 가지기 때문입니다(계6:10, 16:6).
흰 옷 입은 수많은 무리들 역시 <큰 환난에서 나온 자들>입니다(계7:14).
인치심을 받은 자들도 하나님의 종들로 표현된 모든 성도들이고(계7:3, 9:4, 19:5),
흰 옷 입은 수많은 무리들 역시 예수를 믿고 증거함으로 인해 핍박 받은 성도들의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인치심의 사건은 성도들을 심판 재앙에서 보호하기 위한 특별한 배려입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사탄과 적그리스도의 핍박으로 인하여 <대 환난>을 통과해야 합니다.
그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를 버려둠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영광에 참여함의 복이 됩니다.
계시록 7장은 심판 재앙에서 보호 받는 성도들의 모습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그리스도로부터 <대 환난>의
핍박을 받는 <성도의 두 가지 모습을 반영한 그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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