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시록은 어렵기도 하지만 사람이 인위적으로 어렵게 만들기도 합니다.
특별히 두 가지 큰 어려움이 있는데 모두 사람이 만들어낸 장애물들입니다.
하나는 묵시문학이고 나머지는 요한 신학입니다.
이 두 가지는 서로 연관되어 있어서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최근 요한 신학에 대한 우려할만한 일들이 지속적으로 발견되고 있고,
또한 매우 나쁜 흐름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1. 요한이 묵시문학으로 만들었다는 요한신학
요한이 계시를 받은 후 계속해서 묵상하다가 최종적으로 묵시문학이란 형태로 전달했다는 주장입니다.
계시를 받은 후 오랜 시간이 경과할 때까지 계시록의 기록을 미루었다는 전제가 형성됩니다.
어떤 자들은 10년, 길게 잡은 자들은 20년까지도 보고 있습니다.
이 견해는 최소한 요한이 계시를 보았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당시에 유행하던 묵시문학으로 바꾸어서 전달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문제점은 이런 주장들이 성경을 벗어나게 만든다는 점입니다.
성경의 묵시문학 정도면 충분한데도 그것을 벗어나, 주전 2세기부터 주후 2세기 전후의(약 400년 정도) 묵시문학을
연구해야만 계시록을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학자들을 제외한 자들은 요한계시록을
접근하기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2. 요한이 구약성경으로 계시록을 만들었다는 요한신학
최근 계시록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사도 요한을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데이비드 A. 드실바는 그의 <신학개론>에서 이런 주장을 합니다.
"대부분의 비평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으로, 요한계시록이 저자의 창조성과 구약의 다른 묵시문학과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초대 기독교 전승에 대한 해석적 작업을 통해 만들어 낸 문학적 산물이라는 주장이다"
쉽게 말하면 요한 계시록은 요한이 만들어낸 작품이라는 것입니다.
실제로는 어떤 계시도 보지 않았는데, 그가 구약을 연구하고, 또 전해내려온 이야기들을 종합해서
계시록을 기록했다는 것으로 주장합니다.
이런 주장들은 요한을 거짓말쟁이로 만들어 버립니다.
요한이 보았고, 들었고, 보고 들었다는 것들이 모두 거짓으로 단지 초대교회의 필요성을 충족하기 위한 작품이란 견해입니다.
이런 주장들을 바탕으로 계시록을 해석하는 학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몇몇 유명한 한국 학자들은 1과 2의 견해를 섞어서 사용합니다.
계시는 보았지만 요한이 구약이나 전승들을 마치 본 것 처럼 사용한다는 주장입니다.
이런 두 가지 견해들은 이미 성경을 많이 벗어났습니다.
요한 계시록을 읽어도 되고, 안 읽어도 되는 그저그런 책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계시록이 성경의 영감으로 기록되었다는 믿는 우리들은, 이런 거짓 주장들을 분별하여
제거하며, 바른 틀이 형성되도록 성경에 근거해서 바로 세워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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