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와 마르다를 통해 이스라엘 사람들이 부활에 대한 소망이 얼마나 확고한지 알 수 있습니다.
철저하게 마지막 날에 다시 부활할 것을 믿고 있습니다.
* 마르다가 이르되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요11:24)
마르다의 부활 신앙은 곧 구약 백성들의 신앙입니다.
그렇다면 동방의 의인이었던 욥은 어떤 부활관을 가지고 있을까요?
* 사람이 누우면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하늘이 없어지기까지> 눈을 뜨지 못하며,
잠을 깨지 못하느니라(욥14;12)
이스라엘 백성들은 신자의 죽음을 잠을 잔다는 말로 표현합니다.
스데반의 순교 역시 잠을 잔다는 말로 마무리 됩니다.
*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행7:60)
잠자던 자들의 부활에 대해 욥은 어느 정도 알고 있었을까요?
사람이 죽으면 다시 살아남이 불가능하다고 표현합니다.
죽었다 다시 살아나서 육체적인 삶을 살 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어느 시점이 되었을 때 사람은 다시 눈을 뜨고, 잠을 깨듯 일어납니다.
욥은 그 시점을 <하늘이 없어지는 시기>라고 합니다.
이 말의 의미는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첫째로 하늘이 영원토록 존재하듯이 사람은 죽은 후에 영원히 일어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부활은 없다라고 볼 수 있습니다.
둘째로 부활은 있는데 그 시점이 이 세상의 모든 질서가 끝나는 시점입니다.
그 시점이 바로 하늘이 없어지는 시기입니다.
이런 두 번째 견해가 타당하느냐고 물을 수 있습니다.
아담의 모든 지혜가 구전되어 있었던 옛 시대 사람들은 어느 정도의 올바른 지식을 가지고 있었을까요?
하늘이 없어지는 시기는 곧 옛 하늘과 옛 땅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시기입니다.
*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계21:1).
구약이나 신약은 처음 지음을 받은 하늘이 없어질 것이라 종종 말을 합니다.
* 주여 태초에 주께서 땅의 기초를 두셨으며, 하늘도 주의 손으로 지으신 바라,
그것들은 멸망할 것이나 오직 주는 영존할 것이요, 그것들은 다 옷과 같이 낡아지리니,
의복처럼 갈아입을 것이요...(히1:10-12, 시102:25-26)
욥이 구약 이스라엘 백성처럼 부활을 알고 있었다면 그 시점이 옛 하늘과 땅이 끝나는 때로 보았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성도들의 부활과 휴거의 시점은 단 한 번입니다.
옛 하늘과 옛 땅의 시점이 끝나는 때 곧 새 하늘과 새 땅이 도래하는 시간과 일치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의 부활과 휴거의 시점은 결코 비밀스럽게 일어날 수 없습니다.
그리고 환난 전 휴거 같은 비성경적인 이론들은 사람들이 만들어낸 인본주의 작품이라는 것도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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