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가톨릭을 보면서 교훈으로 삼았던 여러 부끄러운 전통들을
지금의 개신교 내에서도 조금씩 닮아가는 모습을 보입니다.
구원의 면죄부를 남발했던 가톨릭교회처럼, 현재 우리교회들도 동일한 죄악을 범하고 있습니다.
<부끄러운 구원>이란 면죄부를 남발하면서 구원의 인플레이션을 심각한 수준으로 끌어 올립니다.
한국교회는 이런 구원론을 제대로 치료하지 않으면 나침반 없는 선박처럼 방향성을 상실하고, 무기력한 신앙으로
전락될 것입니다.
*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사람이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울까를 조심할지니라(10) *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11) *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12) *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13) *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14) * <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고전3:15) |
1. 부분과 전체적으로 보아야 할 문제들
예수님이 주로 말씀하셨던 나무와 열매 비유에서와 같이 본문 역시 같은 맥락에서 보아야 합니다.
터가 예수 그리스도로 되어 있는 증거(열매)가 곧 불같은 시험에서도 끄떡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외적으로 드러난 행위들이 그 터가 바로 세워졌는지를 증거합니다.
이 부분에 대한 것은 고린도교회에 일어났던 문제들과 배경을 이해하면 쉽게 풀 수 있는 것입니다.
당시 고린도지역은 바울의 선교 활동으로 교회가 왕성하게 일어났습니다.
그 후 바울은 떠났고 교회의 성도들 가운데 일부가 성경을 넘어서는 영지주의 교훈에 오염되었습니다.
바울이 전해주었던 복음의 말씀을 넘어간 자들이 일어났습니다(고전4:6-7).
이들은 당파를 형성했고, 잘못된 교훈으로 성전 된 몸을 다시 타락시켰던 자들입니다(고전3:16).
이들에게 지금 상급을 받느냐 안 받느냐 하는 이런 문제들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을 받느냐, 받지
못하느냐를 경고하는 것입니다.
2. 상급일까요, 구원일까요?
<상 - prize>이란 말은 <브라베이온>으로 신약성경에서는 두 번 사용되었습니다(고전9:24, 빌3:14).
고전3:14절에 나오는 상은 <미스토스>로서 행위에 대한 일반적인 대가로서 삯이나, 보수, 대가(reward)로
사용됩니다(마20:8, 눅10:7, 요4:36, 행1:18).
상이나 삯이나 세상 관점으로 본다면 서로 다르지만, 성령이 주시는 힘으로 살아가는 성도들에게는
별 차이가 없다고 보여 집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모든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골1:28-29).
특별히 본문은 상급을 논하기 보다는 구원에 대해 논함을 보아야 합니다.
사람들의 공적(행한 일들)에 대한 평가가 내려집니다. 언제입니까? <그 날>입니다.
사도들이 사용한 심판의 날은 주님의 재림입니다(딤후4:8). 구약에서 즐겨 사용하는 주의 날입니다.
3. 본문해석
문제가 되는 14-15절을 잘 보셨으면 합니다.
이 문장은 두 문장이 아니라 하나의 문장입니다.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If of anyone the work remains which he built on, a reward he will receive;A - (14절) if of anyone the work will be consumed, he will suffer loss,B he but will be saved, so yet as through fire.C - (15절) |
해석을 해보면, 한 문장 안에 A, B 가 주체로 나옵니다. 각각의 두 그룹이 나옵니다.
문제는 C 에서 나오는 he 가 A 를 가리키는 것인지, 아니면 B 를 가리키는 것인지를 찾는 것입니다.
이것을 문법적인 구조로 찾을 것인지, 아니면 의미론적인 것으로 찾을 것인지 확인하면 됩니다.
이 문제를 심도 깊게 보고자 하는 것은, 이 본문을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죽을 영혼도 살릴 수 있고,
반대로 죽어가는 영혼을 살아있다 해서 영원히 죽일 수 있기 때문에 그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예수님이나 사도들은 일관되게 열매를 통해 그 나무를 평가한다고 했습니다.
즉 성령을 따라 살았는가를 성령의 열매들을 통해 보겠다는 말씀입니다(마7:15-20, 갈6:8, 히6:7-8)
상, 삯하고 반대로 <해 - 제미오오>를 받게 된다는 말도 주목해야 합니다.
<제미오오>라는 말이 쓰인 다른 구절들입니다.
*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마16:26)
* ...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빌3:8)
여기서 언급한 것은 모두 상급이 아니라 그보다 더 근원을 다루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라고 했던 부분도 보아야 합니다.
불신자들에게 쓴 글이 아니고 교회 안에 있는 자들에게 쓴 것이기 때문에 여기서 누구든지는 복음을
들었던 고린도 교회 교우들입니다.
예수님도 이런 <누구든지>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합니다.
*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나님 앞에서 시인하고,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마10:32-33)
<불 가운데서> 구원을 받는다는 표현은 무엇일까요?
한 마디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한단 이야기입니다.
마지막 시대 즉 재림을 앞두고 있을 혹독한 대 환난을 의미합니다.
* ... 또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행14:22)
베드로 사도 역시 이 부분에 대해 명확하게 표현합니다.
* 너희 믿음의 확실함(시련 - 원 뜻)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벧전1:7)
4. 넓게 보면 잘 보입니다
전체적인 관점에서 보면, 자신의 건물이 타버린 자는 성전을 더럽힌 자들로서(고전3:17) 고린도 교회 내에서
문제를 일으킨 영지주의자들입니다.
이들은 이 세상의 지혜로 복음을 판단했던 자들입니다(고전3:19).
모두 연결되어 있어서 서로 분리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따라서 본문을 가지고 <부끄러운 구원>이 가능하다고 논리를 전개하는 것은 사실을 왜곡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을 알고, 우리 가운데 <부끄러운 구원>이란 말을 사용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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