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하나님나라

갈등의 근원을 찾아 해결하라

오은환 2015. 6. 12. 23:29

주 안에서 같은 형제라도 해석상의 큰 차이는 커다란 갈등을 촉발시킵니다.

중심적인 사상은 거의 일치할 수도 있습니다.

중심이 같은데도 왜 그처럼 관점의 차이가 큰 것일까요?

간단하게 진단하면 <하나님의 통치의 방법 차이>에서 시작합니다.

 

질문하나 합니다.

"하나님은 언제부터 사람들과 모든 피조물을 다스렸습니까?"

초등학생들도 대답할 수 있습니다.

피조물들을 만들었을 때부터 입니다.

 

같은 질문을 조금만 바꾸면 전혀 다른 답변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언제부터 시작되었습니까?"

위와 동일한 질문인데도 머뭇거립니다. 

 

1. 하나님의 나라는 언제부터 시작되었는가?

 ① 예수님이 오신 후 부터 시작되었다는 견해

아마도 예수님과 세례 요한이 선포한 메시지가 <하나님의 나라>이므로 제일 많이 선택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견해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다른 시대에 하나님의 나라가 있었는지에 대해서 무관심합니다.

알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거나 아니면 생각조차 안 했을 수도 있습니다.

 

 ② 오순절 이후부터 시작되었다는 견해

성령이 없이는 통치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이런 견해를 추종합니다.

당연히 성령이 인간에게 온 시점도 오순절로 봅니다. 

 

 ③ 타락 후 구약 시대부터 시작되었다는 견해

이 정도로 일찍 보는 사람들은 별로 없습니다.

성경을 깊이 보지 않으면 수용하기 어려운 견해입니다.

그러나 서구 신학자들은 이 견해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구약 시대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왕이었다는 사실에 고민합니다.

 

 ④ 타락 전부터 시작되었다는 견해

사실 정답은 ④번 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거역한 것은 하나님의 통치 즉 하나님이 왕으로 다스리는 나라에 대한 반역입니다.

 * 그들은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거기에서 나(하나님)를 반역하였느니라>(호6:7)   

 

2. 하나님의 통치, 나라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하나님의 통치가 창조 때부터 사람을 비롯하여 모든 피조물 가운데 시작되었다는 것을 이해했다면

이어지는 질문은 <어떻게 통치 - how to reign> 했는가를 밝히는 것입니다. 

 

 ① 신구약의 통치가 다르게 일어난다는 견해

가장 일반적으로 받아들이는 견해는 하나님의 통치가 신약 오순절부터는 성령으로, 구약은 왕, 선지자,

제사장들을 통해 일반 백성들을 통치했다는 주장입니다.

신약시대는 성령으로, 구약시대는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통치했을까요?

 

 ② 신약은 성령으로, 구약은 율법으로

또 많은 사람들이 관습처럼 받아들이는 견해입니다.

하나님이 구약은 율법으로 통치했기에 구약 백성들은 믿음을 유지하기 힘들었고,

구원에 이르기가 거의 불가능했다는 주장까지 합니다.

이런 견해는 복음서 즉 예수님의 초림부터 오순절 직전까지는 어떻게 통치했는지에 대해 침묵합니다.

 

또한 구약에는 성령이 개인적으로 내주하심에 대해서도 거부합니다.

구약 백성들이 성령 없이도 신앙생활을 잘할 수 있었거나 아니면 불행하게도 극소수만 구원에 이르렀다는

주장입니다.

불행하게도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의 많은 신학자들이 수용하고 있습니다.

 

 ③ 타락 후부터 성령으로 신구약 모두 동일하게 다스린다는 견해

극히 소수지만 일부 신학자들이 이런 주장을 펼친다는 것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아직 자신감이 부족합니다.

 

 ④ 타락 전부터 성령으로 다스린다는 견해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으로 창조한 아담 때부터 성령으로 다스렸습니다.

물론 성령의 임재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총에 근거한 것입니다.

선악나무와 생명나무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의 상태를 잘 묘사합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자녀 됨이라는 목적을 향해 지음을 받았고, 그 길은 오직 생명나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 참여함과 성령의 통치하심(하나님나라)에 순종함으로 결정됩니다.

성령의 통치하심에 순종함이 곧 하나님의 나라이며, 왕 되신 하나님의 통치 방법입니다.

 

3. 하나님나라 조감도

간단하게 그림으로 그려 보았습니다.

대해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아직 자신감이 부족합니다.

 

갈등의 근원은 근본적인 교리적 차이가 아니라고 봅니다.

근원을 이루고 집행하는 방법의 차이를 연구하는데서 많은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어찌 보면 <해석적 한계>인지도 모릅니다.

 

중요한 것은 방법의 차이가 근본적인 교리 체계를 무너뜨리거나 위협을 가한다면

심각한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환난 전 휴거 문제는 그렇게 생각할 수는 있다고 관용을 드러낼 수 있지만,

그것이 지나쳐서 <시한부 종말론>에 이르거나, 교회를 혼란에 빠뜨리게 한다면,

방법론의 차이가 근본 교리와 교회를 위협한다는 것을 알았으면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통치 방식에 대한 잘못된 이해가 얼마나 큰 폐해를 일으키는지도 보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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