숱한 학자들이 야고보서가 이해 안된다고 탄성합니다.
그러면 그들이 복음서는 이해한다는 말일까요?
야고보서를 이해하지 못하면 복음서도 모른다는 말입니다.
*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약2:26)
야고보의 이런 외침은 어디서 배운 것일까요?
바로 예수님에게서 배운 것입니다.
영생의 도달함은 행함에 있습니다.
*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눅10:28)
구약의 모세 또한 동일한 말을 합니다.
예수님도 실상은 구약에서 그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 너희는 내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사람이 이를 행하면 그로 말미암아 살리라,
나는 여호와이니라(레18:5)
야고보나 예수님 그리고 모세는 동일한 말을 한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질문을 해 보십시요.
만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그런 사랑을 행하면 영생을 얻게 될까요?
절대로 영생에 도달하지 못합니다.
이런 복은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과 그 결과 성령의 내주하는 은혜 안에서 주어진 것입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구속과 성령 내주 안에 거하는 자들은 그 인도하심을 따라 순종하면 영생에 이른다는 말입니다.
구속과 성령 내주라는 전제를 잊어버리면 사실 성경과는 무관한 해석에 도달합니다.
바울은 다른 말을 했을까요?
아브라함이 의롭게 됨을 절대로 행위에 근거하지 않았음을 주장합니다.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다는 것을 알려 줍니다.
이런 바울의 말은 야고보나 예수님 혹은 모세와 상반된 주장일까요?
*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롬4:2)
이 말을 오해하면 안됩니다.
바울은 로마교회에 인간이 의롭게 되는 길에 대해 말한 것입니다.
구속과 성령내주라는 전제 아래서 행위나 믿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구약의 이스라엘이 아무런 일을 행하지 않았어도 그리스도의 구속과 성령의 내주로 인하여
의롭게 되었음을 이방인에게도 적용한 말입니다.
다시 말해 구속함과 성령의 내주하심을 믿음으로 새 사람이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새 사람 즉 거듭남이 되는 길은 어떤 행위로나 의식으로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복에 대하여 다윗이 말한 바,
불법의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할 사람은 복이 있도다(롬4:6-8)
바울은 어떻게 의롭게 되는가의 시초를 이야기 하고,
야고보, 예수님, 모세는 의롭게 된 백성들이 구속 안에서 즉 성령 안에서 살아가야
그 약속이 효력이 있음을 말한 것입니다.
따라서 야고보, 예수님, 모세가 말한 행함이 없는 믿음은 곧 성령을 따라 살아가지 않는 성도의 삶은
곧 그리스도 안에 거하지 않는다는 증거로 삼겠다는 의미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밖에 있으면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시작부터 종료까지 그리스도 안에서 즉 성령 안에서 있을 때 언약은 유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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