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성경 이모저모

24. 인자가 가져오는 <왕권>

오은환 2013. 9. 29. 19:51

24. 인자가 가져오는 <왕권>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16:28)

 

<그 왕권>은 원어로 보면 <그 왕국, 그 나라>로 해석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다 비슷할 수 있지만 일단 왕권하면 좀 생소하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하면 <하나님 나라>입니다.

 

좀 더 생각해볼 것은 <그 나라>는 예수님을 소유격으로 하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는 성경 여러 곳에서 언급됩니다(1:13, 11:15).

문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가 도래하는 시점입니다. 예수님이 자신의 이름으로 성령을 보내는 시점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가 시작되는 시간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말한 왕권, 주님의 나라는 곧<아들의 성령을 통한 예수님이 통치하는 나라> 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여러 가지 질문들이 생길 수 있습니다.

 

1.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의 나라(통치)가 있었는가?

유대인들은 구약시대에 하나님의 나라가 있었다고 생각했을까 하는 질문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이런 질문에 서슴없이 <있다>라고 말합니다.

청중들 역시 아무도 반론을 제기하지 않습니다.

* ...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21:43)

오랫동안 독점적으로 누려왔던 하나님 나라를 이제 유대인들이 빼앗길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빼앗긴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열매를 맺지 못해서 그렇습니다(21:41)

 

2. 구약시대에 하나님의 나라가 어떻게 펼쳐졌는가?

매우 중요한 질문입니다. 16:28절에서 나오는 것과 밀접하기 때문입니다.

구약시대 언약백성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통치는 <아버지의 성령>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구약성도들에게 아버지의 성령의 내주로 인하여 하나님의 통치가 펼쳐졌습니다.

이 부분은 구약성경 구조의 패러다임의 전환을 요구하는 것으로 심사숙고해야 합니다.

또한 이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구약 시대에 성령의 내주가 있었는가>라는 커다란 문제에 직면합니다.

 

결론은 성령이 내주 했습니다.

이 부분을 봐야 구약이 제대로 열립니다.

구약성도의 구원이나 신약성도의 구원의 길이 동일하기에 그렇습니다.

 

쉐마로 불리는 신6:4-5절을 어떻게 실천할 수 있는가만 보아도 잘 보입니다.

어떻게 마음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가에 대한 답변입니다.

*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네 마음과 네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너로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게 하사>

너로<생명을 얻게 하실 것>이며(30:6)

 

구약성경은 계속해서 율법을 주실 때 그것만 주신 것이 아니라 깨닫고 행할 수 있는

성령을 함께 주셨다고 말합니다.

*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내가 너희와 <언약한 말><나의 영><계속하여>

<너희 가운데>머물러 있나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지어다(2:5)

 

위의 두 구절들만 보아도 구약성도들은 <특정한 사람만 성령을 받았다는 말이 사실이 아님>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잠깐 머물다가 떠났다는 이야기도 사실이 아닙>니다. 계속해서 머문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더 구체적인 것은 사도바울이 인용한 "너희는 하나님의 성전이라" 하는 구절이 <구약성경을 인용>했다는 것입니다(고후6:16).

야고보 사도 역시 그렇습니다.

* 너희는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냐(4:5)

이 부분은 대다수의 학자들도 인정합니다.

 

예수님 때문에 이제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성전이 되었다고 바울은 말합니다.

옛날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성전인 것처럼 말합니다.

*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2:22)

 

중요한 것은 차이점을 잘 보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이 <아버지의 성령> 안에서 이스라엘이 이미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성전이 된 것 같이 이제는 예수 안에서(그리스도의 성령 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 하나님의 성전이 되었다는 것 입니다.

구약성도들에 대한 표현을 보면(사실 예수님의 십자가로 인한 새 언약을 맺기 전까지 복음서의 상당부분) 하나님의 나라가 임함으로 나타나는 표현들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천국에) 들어가리라(7:21, 12:50)

 

구약 이스라엘이 성령 안에서 사는 결과 나타나는 것은 <아버지의 뜻대로 사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버지의 성령 때문에 그런 표현을 사용합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제 <자신이 왕권(나라)을 가지고 온다>고 합니다. (아버지의 왕권, 나라라는 구약성경을 이해하면 예수님의 왕권이 무엇인지 보입니다)

 

그 시점은 부활, 승천 후 아버지 보좌 우편에 앉은 때입니다.

예수님은 이제 자신이 보낸 성령 안에서 통치를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현재적 하나님 나라입니다.

현재적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을 통해 임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습니다.

 

결국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나 아들의 뜻대로 행하는 자나 한 성령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 입니다.

다만 다른 것은 <누구의 이름으로 그 일들이 이루어지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28:18절에 나오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에서 '모든 권세' 부분 입니다.

저는 모든 권세에 대해 이렇게 생각합니다.

* 성령을 주님의 이름으로 주심(3:1, 5:6) - 아버지의 것인데 아들에게 주신 것

* 천사들 - 아버지의 것인데 아들에게 주심(26:53, 18:36)

(마태는 천사를 아버지의 소유로 보고, 요한은 예수님의 종들로 표현합니다)

* 성도들

* 모든 피조물들

 

3. 그리스도의 왕권(나라, 왕국)

다시 마16:28절로 돌아가서 보면, 예수님이 보내신 성령을 통하여 이루어진 하나님 나라와 구약시대 아버지의 성령을 통해서 이루어진 하나님 나라의 차이가 어느 정도인가 하는 것이 궁금할 것입니다.

한 성령님이 다스리는데 무슨 차이가 존재할까요?

 

성령은 자의로 행하지 않고 보내신 자의 뜻을 행하는 것에서 제한을 받습니다(16:13).

즉 성령은 계시된 범위 내에서 활동하시기에 구약에서는 성령을 통한 행복함과 더불어(33:29),

오실 메시아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습니다.

신약에서는 실체가 오심으로 인하여 더욱 완성된 계시를 보게 되었고, 그럼으로 인하여 구약에서 보기 어려웠거나 매우 드물게 나타났던 표적들이 드러났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것과 일반 학자들이 바라보는 가장 큰 시각의 차이점은 < 구약 성도들에게 하나님 나라가 있다는 것과 성령의 내주>입니다. 이 부분을 보게 되면 마태복음이나 야고보서의 근저를 보게 됩니다.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펼쳐지는 두 곳 성경의 바탕은 <하나님 나라와 성령>을 모두 인식하고 있기에 이 둘을 생략하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구약의 구원 즉 다른 말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신약과 동일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성령이 내주하니 성령의 열매를 맺으라는 것입니다(이사야 5장의 포도원의 노래 참고)

그러므로 사람이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행위로 심판하지만 그 행위의 근원은 성령이기 때문입니다(2:8-9).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둠이 얼마나 더하겠느냐(6:23)

구약백성들 가운데 성령의 빛이 있다는 것을 모두가 인정하는 것입니다.

16:16-17절의 베드로의 신앙고백 역시 그것을 알게 하신 이는 <네 아버지>라고 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아버지의 성령>을 말합니다. 아직 오순절 주님의 성령이 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을 통해서 사람들은 그 당시 사람들이 성령이 없다는 이야기를 주장하기도 합니다.

*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7:39)

- 이 부분은 예수님이 보내실 <또 다른 보혜사>를 언급한 것입니다. 아직 영광을 받지 않았기에

즉 구속사역의 완성이 안 되었기에 이들에게 <아버지의 성령>이 있음을 의미합니다.

 

*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이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10:20)

구약 성도들은 성령을 너무도 잘 알고 있어서, 마태는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표현했고(7:11), 반면에 누가는 성령에 대해 생소한 이방인들에게 구체적으로 성령이라 말합니다(11:13)

이런 이유로 유대인의 선생으로서 무지했던 니고데모가 혼났습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만 하나님나라를 볼 수 있고, 들어가는데 이것에 무지했기에 받은 책망입니다.

 

4. 또 다시 돌려주는 나라(왕권)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왕권)<다시> 아버지께 돌려집니다.

예수께서 악한 자들을 모두 굴복시킨 후입니다.

* 그 후에는 마지막이니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고전15:24)

그 시기는 성경으로 볼 때 악인들의 심판과 함께 사탄이 불 못에 던져지는 시간입니다(20).

* 그가(예수님) 모든 원수를 그 발아래에 둘 때까지 반드시 왕 노릇 하시리니(고전15:25)

지금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왕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