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계시록토론

큰 독수리의 두 날개와 광야가 상징하는 것(계12:14)

오은환 2015. 9. 17. 18:27

상징으로 기록된 곳은 관대하게 해석하기 쉽습니다.

그러다보니 이런저런 나와서는 안될 것들도 등장하곤 합니다.

 *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으매(계12:14)

 

이 한 구절에 많은 상징들이 나타납니다.

먼저 여자와 큰 독수리의 두 날개, 광야, 뱀이 등장합니다. 

여자에 대해 크게는 교회, 구체적으로 이스라엘, 구약 교회 또는 신약 교회로 해석합니다. 

 

그런데 독수리의 두 날개에 대해 이상한 해석들이 등장합니다.

요한이 보았을 때 진짜 독수리를 본 것이 아니라 다른 물체를 보고 표현할 단어가 없어서

거대한 독수리로 기록했다는 주장입니다. 

 

그래서 해석이 분분합니다.

큰 독수리는 거대한 비행기라고 맞춰넣기도 합니다.

이스라엘이나 혹은 신약교회가 도피처로 가는데 사용하는 도구로 한 발 더 나아가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성경을 넘어가지 않았으면 합니다.

 

1. 독수리 두 날개는 성령의 일하심의 표현

 

 1) 독수리 날개

 

독수리의 두 날개에 대해 성경이 무엇이라 하는지 찾아보면 됩니다.

이것은 성령에 대한 구약적 표현법 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인도하셨을 때 종종 사용됩니다.

 

 ①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출19:4)

 

 ② 마치 독수리가 자기의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자기의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의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그의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이,

   여호와께서 홀로 그를 인도하셨고 그와 함께 한 다른 신이 없었도다(신32:11-12)

   (독수리의 <너풀거리>는 행동과 성령이 수면 위에 <운행 - 창1:2>했다는 단어는 모두 같습니다)

 

 ③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사40:31)

 

 2) 주의 날개

 

 ① ... 여호와께서 그의 날개 아래에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룻2:12)

 

 ② 나를 눈동자 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감추사(시17:8)

 

 ③ ... 사람들이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피하나이다(시36:7)

 

 ④ ...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서 이 재앙들이 지나기까지 피하리이다(시57:1)

 

 ⑤ 내가 영원히 주의 장막에 머물며 내가 주의 날개 아래로 피하리이다(시61:4)

 

 ⑥ 그가 너를 그의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의 날개 아래에 피하리로다...(시91:4)

 

 ⑦ 새가 날개 치며 그 새끼를 보호함 같이 나 만군의 여호와가 예루살렘을 보호할 것이라,

    그것을 호위하며 건지며 뛰어 넘어 구원하리라 하셨느니라(사31:5)

 

 ⑧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내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마23:37)

 

독수리의 날개나 주의 날개는 모두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보호하기 위한 모습을 상징한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성령께서 성도들 가운데서 일하심을 표현한 것입니다.  

 

2. 광야는 성도들을 양육하는 은혜의 장소

 

광야는 독수리의 날개의 연장선에서 해석해야 합니다.

성령의 인도하심 속에서 구약 이스라엘을 인도했던 훈련과 은혜의 장소입니다.

(신8:2,15,16, 32:10, 느9:19, 시78:52, 136:16, 렘2:2)

 

계시록 안에서도 광야는 성도들이 부딪치는 삶의 현장입니다.

마지막까지 성도들은 특정하게 고립된 장소에 거하면서 핍박을 피하지 않습니다.

음녀와 더불어 싸우는 성도들은 항상 같이 있으면서 구별됩니다.

 * 곧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광야로> 가니라. 내가 보니 여자가 붉은 빛 짐승을 타고...(계17:3)

 

계시록의 전체적인 틀은 성도들이 세상 사람들 가운데 있으면서 복음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만일 도피처라는 특수한 곳에 있다면 단절된 상태로 아무런 만남도 일어나지 않게 됩니다.

만나지 않으면 대 환난의 의미도 없고 핍박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광야는 성도들이 양육받는 장소(계12:6,14)를 상징합니다.

그 장소는 혹독한 훈련이 따라옵니다.

사탄의 공격이 불을 토하듯 강하지만 성령의 도우심으로 이기게 되는 곳입니다(계12:15-16).